11월 셋째주 목요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철학의 날’이다. 이를 기념해 철학주간 행사가 열렸는데 나는 인문철학재단 타우마제인과 한국철학회가 주최하는 철학 페스티벌 ‘퀘스천 소사이어티(The Question Society)’에 참여했다(타우마제인은 그리스어로 ‘놀라움’ ‘경이’라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은 경이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을 남겼다).
이 페스티벌에서 내가 대담자로 참여한 코너의 물음은 “선함은 왜 지루한가?”였다. 이는 ‘지루함은 나쁘다’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렇게 물음에 숨겨진 전제를 찾고 검토하는 것은 철학적 검토의 기본이다). 지루함은 나쁜가?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지루함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지루함에 대해 철저히 보루를 쌓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보루를 쌓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가장 내적인 샘에서 솟아나는 가장 강한 청량제를 결코 마실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시간에 던져진 존재’인데 그 시간을 자신이 주체가 돼 누리려면 ‘지루함’ ‘한적함’과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지루함을 강박적으로 회피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무엇을 두려워하는 건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지루함에 보루를 쌓는 사람은 혼자임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지루함을 피하려고만 하면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일 줄 모르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알 수 없고, 자기 자신을 모르니 자기답게 살 수도 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세상의 기준에 매여 살게 돼 공허감에 시달리게 된다.
지루함과 한적함은 우리에게 내면화된, 독촉하는 세상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세상의 기준에 쫓기는 마음으로는 ‘나’에 갇혀 ‘나’를 넘어서는 시선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세상의 시선에 내가 어떻게 평가되는가에만 매몰되기 쉽다. 그러다보면 타인들을 나의 인정욕을 채우도록 박수쳐주는 사람,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어야 하는 사람으로만 대하게 된다. 갑질을 하고 싶어하거나 타인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즐기는 등 건강하지 않은 욕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사실은 지루함으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가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지루함에 정면승부를 걸어야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타인도 자기답게 살아가도록 도우려 하게 된다. 나의 자기다움은 타자의 자기다움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지루함과 친구를 하며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안정적인 마음으로 살 수 있다. 인간은 혼자일 때는 혼자여서 좋고 함께일 때는 함께여서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
지루함과 친구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지루함을 누릴 줄 모르면 도파민이 분출되는 것만 찾게 되기 쉬운데 그러한 행위가 인간 존재에 평안을 주지 않는다. 니체가 말하는 ‘자신의 가장 내적인 샘에서 솟아나는 가장 강한 청량제’를 마실 줄 알아야 한다.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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