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21일 발생한 신형 구축함 진수식 파손 사고(사진)의 책임자 문책을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있다. 특히 수사 기관에 소환·구속된 책임자 실명과 형사처벌 경과도 이례적으로 대내외에 공개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해군력 강화를 독려하다 벌어진 사고의 책임을 실무자 책임으로 돌리고, 주민 통제력도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 노동신문은 26일 “법 기관에서 중대사고 발생에 커다란 책임이 있는 리형선 당중앙위원회 군수공업부 부부장을 소환해 구속했다”고 보도했다. 법 기관은 지난 22일 홍길호 청진조선소 지배인을 소환했고, 24일에는 강정철 청진조선소 기사장, 한경학 선체총조립직장 직장장, 김용학 행정부지배인 등 조선소 실무 간부들을 줄줄이 구속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례적으로 빠른 행보”라고 평가했다.
북한이 책임자 처벌에 속도를 내는 건 우선 ‘김정은의 분노’ 때문이라는 평가다. 지난 21일 사고 당시 청진조선소를 찍은 위성사진에는 김 위원장이 앉았을 사열대로 추정되는 하얀 지붕이 포착됐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같은 크기인 5000t급 최현호 구축함 진수식 때처럼 이번에도 딸 주애와 함께 진수식을 참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위원장의 ‘해군력 강화’ 치적을 내세울 이벤트가 사고로 엉망이 된 셈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김정은이 현장에 있었고, 주민들이 다 보고 있는데 숨길 수도 없으니 상당히 화가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빠른 문책은) 내부 기강을 다잡고 책임자 처벌을 통해 체제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조급증이 이번 사고의 한 원인이 됐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북한의 열악한 장비 상황을 고려하면 최현호 진수 이후 한 달 안에 같은 크기의 구축함을 추가 진수하는 일정 자체가 무리였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에서 가장 심하게 정보가 억압되는 사회인 북한에서 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건 김정은이 해군 전력 증강을 얼마나 긴요한 것으로 보는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다음 달 말 전원회의 전까지 구축함 복구 작업을 마무리하라는 지시도 내린 상태다. 노동신문은 이날 “함의 균형성을 완전히 회복하기 위한 작업이 계획된 일정에 따라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대형 선박 이동에 필요한 크레인 등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만큼 수습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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