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과 치열한 경쟁,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개인화된 삶을 살아가는 2030 청년들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취미활동은 매우 중요한 사랑의 영역이다. 연인, 가족, 친구 등 친밀한 관계를 통한 사랑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여기는 세대인 것이다. 개인적 취미와 취향이 그만큼 명확해진 청년들은 그 때문에 기존의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하는 세대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취미 활동은 더 넓은 의미에서 타인과의 관계 맺기, 서로 간의 이해와 존중, 소속감 등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청년들이 사랑하는 취미를 이해함으로써 그들에게 맞는 공동체의 모습, 연결의 통로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크리스천 청년을 응원해 온 갓플렉스(God Flex)는 청년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다양한 취향을 나눌 수 있는 교회 속 소모임과 공동체 현장을 따라가 봤다.
신앙 넘어 취미 나누는 공동체
지난 17일 주일을 앞둔 경기도 성남 만나교회(김병삼 목사)의 오후는 각종 모임과 예배 준비로 북적였다. 본당 앞 세미나실에선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유리문 틈으로 흘러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청년 4명과 권사 1명이 보드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책상 위로 주사위를 굴려 원하는 숫자가 나오면 손을 뻗으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엔 머리를 감싸 쥐고 탄식을 내뱉었다. 게임 회차가 거듭될수록 분위기는 고조됐다. 교회 보드게임 소모임 ‘밑장빼기’ 모임 현장이다.
만나교회는 지난해 교회 로비에 소모임 선택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누구나 쉽게 키오스크에서 자신이 원하는 소모임을 선택해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불과 1년여 사이 1000여개에 달하는 소모임이 운영됐고, 현재도 180여개 소모임이 운영 중이다. 소모임 유형은 신앙을 나누는 전통적인 교회 내 모임부터 단순 취미 모임, 일상 모임 등까지 다양하다.
대표적 취미 모임인 밑장빼기는 매주 1회 모이는데, 한 번 모일 때마다 서너 시간은 함께하는 게 기본이다. 초창기 팀원인 김주혁(32)씨는 “교회에서 만나는 모임은 시작이 편안하다”며 “안전하고 익숙한 환경에서 형성됐기 때문에 모임 자체를 믿을 수 있고 취미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소모임 담당 차우병 부목사는 “소모임의 가장 큰 특징은 성도가 주도하는 사역이라는 점”이라며 “특히 청년들의 활발한 자발적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나교회의 소모임은 크게 세 갈래다. 일회성으로 모이는 원데이 소모임, 교인 위주로 주기적 만남을 지속하는 클럽 소모임, 온라인으로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인증하는 챌린지 소모임 등이다. 이 가운데 원데이와 챌린지 모임은 교인이 아니더라도 교회 홈페이지 가입 회원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청년들의 참여가 높은 이유도 이 점에 있다.
차 목사는 “소모임을 통해 교회 안에서 취미와 일상을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관계가 형성된다”며 “청년들이 교회 사역에도 동참하게 되는 통로가 된다”고 강조했다. 청년들이 평소 접근하기 어려웠던 분야도 소모임을 통해 알아가는 기회가 생기다 보니 교회 동력화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여성 청년을 대상으로 한 풋살 클럽 ‘MGG FC(만나 소녀시대 풋살클럽)’도 인기 모임 중 하나다. 허윤재 부목사는 “풋살을 배우던 자매 3명이 만든 모임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45명이 모이는 모임으로 성장했다”며 “절반 이상이 풋살을 처음 접한 청년들인데 건강한 취미생활과 다이어트 등 다양한 만족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자발적으로 시작한 모임인 만큼 참여 열정도 남다르다. 허 목사는 “자매들이 각자 차를 끌고 경기도 광주, 용인 등 공을 찰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풋살을 즐긴다”며 “운동을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몰랐던 자매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관계·소통 갈증 해소 통로 돼
경기도 파주 한소망청년교회(김동주 목사)는 청년이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교회를 지향한다. 교회는 신앙 기반의 ‘클래식’과 취미·관심사 기반의 ‘클럽’으로 구분되는 목장 모임을 운영한다. 모두 31개 목장 중에는 등산, 사진, 부동산 경매, 퍼스널 브랜딩 등 다양한 취미를 기반으로 한 모임들이 있다. 모든 목장은 1년에 한 번씩 청년들의 신청을 받아 구성된다.
김동주 목사는 “비슷한 취미나 성향, 방향성을 공유하는 청년이 모인 모임은 깊은 관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두세 명부터 20명이 넘게 몰리는 모임까지 규모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으로 2030세대가 개인화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관계와 소통에 대한 갈증이 크다”며 “자취하는 청년을 위해 명절엔 목장끼리 모여 윷놀이를 하고 음식을 먹는 등 시간을 보내며 외로움을 달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오븐 열자 마음이 열렸다
서울 중구 남산다눔교회(김태기 목사)에선 매년 봄과 가을, ‘공유주방’으로 변신한 교회 공간이 개방된다. 이름하여 ‘다눔 공유주방장’ 사역으로, 청년들과 함께하는 베이킹 클래스가 열린다. 단순한 쿠킹 클래스가 아닌 식탁 교제를 통해 신앙과 공동체의 문턱을 낮추는 창의적인 전도 모델이다.
2022년 서울 중구청과 협력, 교회가 비용을 감당해 시작한 이 사역은 현재까지 10시즌째 이어지고 있다. 매회 40여명의 청년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일상 속 전도의 접점을 확장해 가고 있다.
공유주방장의 주 참가 층은 동국대 덕성여대 숙명여대 등 인근 대학교 학생과 자취 청년이다. 지난 15일 열린 모임에 참가한 16명 중 14명이 대학생이었다. 신청자 대부분은 학교 게시판이나 지역 내 포스터, 교회 SNS 등을 통해 정보를 접한 비신자들이다. 재료비만 부담하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오븐에서 베이킹이 마무리되길 기다리는 동안엔 교회가 준비한 저녁 식사를 함께 나누는 교제가 이뤄진다. 이때 사용되는 방법이 주제별 ‘큐카드’다. 예를 들어 어버이날 시즌에는 ‘언제 부모님의 사랑을 느꼈나요’ ‘사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등의 질문을 나누며 깊이 있는 대화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미지(33) 간사는 “공유주방은 단순 취미활동만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가 시작되는 식탁 공동체”라며 “많은 참가자가 교회를 무거운 곳이 아닌 따뜻하고 환대받는 공간으로 인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식탁 교제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열고 교회 공동체로 연결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교회 대학부 학생이 SNS에 올린 포스터를 보고 1시간 넘는 거리에서 찾아온 한 대학생은 “작은 것 하나까지 정성스럽게 준비된 모습에서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고향을 떠나 홀로 자취 중이던 다른 남자 청년은 외로움 속에서 공유주방장을 통해 교회 공동체를 경험하게 된 후 신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김태기 목사는 “청년들이 부담 없이 찾아와 삶을 나누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며 “저녁 한 끼, 소소한 대화 한 조각이 이들의 삶에 위로와 변화를 주는 통로가 된다. 건강한 교회는 비신자도 건강해지는 열린 공동체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갓플렉스는 오는 24일 안산제일교회(허요환 목사)에서 ‘청년, 사랑, 삶’(롬 5:8)을 주제로 집회를 연다.
성남=글·사진 유경진 김수연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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