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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휴일] 식물원에 와서 쓰는 동물원 시


…(전략)

동그란 식탁에 모인 동그란 얼굴
동그란 컵에 담아 마시는
동그란 웃음

태어난 자리에서 죽은 나무가
밑동만 남겨진 채 잘려 나가는 걸 볼 때
동그란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식물도 특별히 살고 싶은 곳이 있을까?
한여름에 얼음을 껴안고 있는 펭귄은 남극을 기억할까?

…(중략)

시간이 원을 좋아해서
시계가 둥근 것이 아니듯
세상엔 좀 더 많은 모양이 필요하고

휴일에 찾은 식물원은 문을 닫았다

식물도 깊은 잠이 필요하니까
잠자는 나무를 따라 눈을 감았다 뜨면

하늘에 새들이 피어 있었다
횡단보도가 얼룩말인 척 누워 있었다
침대에 심어 놓은 인간이 뿌리로 걸어 다녔다

-임지은 시집 ‘이 시는 누워 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에서

동그라미는 처음과 끝이 하나다. 동그라미 안에서는 모순도 없다. 그래서 엉뚱하기도 하다. 새들이 피어 있고, 횡단보도가 얼룩말인 척 누워 있고, 침대에 심어 놓은 인간이 뿌리로 걸어 다녀도,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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