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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칼럼] 낳을 결심 vs 낳지 않을 결심


인구 비상사태·저출생 대책
‘안 낳을 결심’ 돌리기는 부족

해외 석학, “한국 고강도 노동
안 바뀌면 육아 힘들다” 일침

기업은 육아휴직 대체 인력
채우고 유연 근무제 도입해야

# 당신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까 생각했다면 정부의 이번 저출생 대책은 자극제가 될 수 있겠다. 남성 육아휴직을 장려하고, 휴직 급여가 늘어나고, 단기 휴직도 가능해진다니 말이다. 당신은 육아휴직을 갈 수 있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직원일 가능성이 크다. 아이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국가가 돌봄을 책임지는 체계를 갖춘다니 그것도 기대해 볼 만하다. 주택 특별공급에 당첨됐더라도 아이를 낳으면 집을 넓힐 수 있도록 한 번 더 특공 기회를 준다. 비교적 안정된 일자리와 소득을 갖춰 결혼을 결심한 이들에게는 출산까지 고민해 볼 유인책이 된다.

# 그러나 이번 대책이 당신의 ‘낳지 않을 결심’을 되돌리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느꼈더라도 외로워하지 마시라.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2030세대의 90% 정도는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중소기업 직원, 플랫폼·특수고용노동자인 당신은 육아휴직 제도가 있어도 쉽게 쓸 수 없거나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아니 아직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불안에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좋은 일자리와 안정된 수입이 없어 결혼도 할까 말까인데 아이는 그림의 떡이다. 누가, 어떻게 키운단 말인가.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인구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초저출생 시대, 이대로 가다간 인구가 소멸되고 대한민국이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선언과 함께 나온 저출생 대책엔 이렇다 할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획기적이지 않았다. 그동안 나왔던 내용을 반복하며 더 세분화한 느낌이다. 육아휴직 기간과 사용 횟수를 쪼개고 급여는 늘리는 식이다. 이미 ‘낳을 결심’을 한 이들에겐 도움이 되겠지만 ‘낳지 않을 결심’을 했던 사람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전체 기업 중 대기업은 1% 정도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나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는 점이 아쉽다.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좀 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법대 명예교수의 진단을 들어보자. 그는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이 0.78명(2022년 기준)이라는 얘기를 듣고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외친, 고용 분야 세계적 석학이다. 이 영상은 조회수 100만회를 넘으며 화제가 됐다. 최근 방한한 그는 20일 방영된 EBS 특집 프로그램에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고강도 노동이 이제 한국 사회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집안일은 8배, 자녀 돌봄은 6배 더 많이 하고 있다. 남성은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는 대가로 자녀를 돌보며 느낄 수 있는 기쁨을 포기한다. 엄마 아빠 아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한국만큼 오랜 시간 일하는 나라도 없다. 장시간 고강도 노동이 바뀌지 않으면 육아는 힘들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경제적 목표 달성이 가능한 업무 시스템이 필요하다. 아이를 돌봐줄 사회적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청년들은 그것보다는 자신이 일하면서 키울 수 있는 유연한 근무 환경을 원한다.

부모가 유대관계를 가지며 아이를 키우는 시작은 육아휴직이다. 스웨덴이나 독일의 사례에서 입증됐듯 출산율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다. 윤 대통령은 현재 6.8%인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50%까지 올리겠다고 했다. 중요한 건 기업의 자세인데, 육아휴직자로 생긴 공백에 반드시 대체인력을 채워야 한다. 휴직자의 급여는 국가가 고용보험에서 지급한다. 고용주가 휴직자에게 급여를 주는 건 아니다. 그러니 기업은 육아휴직자에게 지급했어야 할 돈으로 대체 인력을 고용하라는 뜻이다. 대체 인력이 있다면 휴직하며 동료에게 미안함과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 복귀한 후에 회사가 휴직자에게 불이익을 줄 이유도 없다. 대체 인력을 뽑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국가가 관리 감독 차원을 넘어 법적 근거를 마련해 제재해야 한다. 나아가 아예 육아휴직을 법으로 강제하는 획기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야당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시차 출퇴근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재택근무 등을 포함한 한국형 유연 근로 모델을 찾아보자. 일하면서 육아도 할 수 있도록 주 4일제까지 공론의 테이블에 올려라. 이 정도는 되어야 정부가 이 사태를 비상상황으로 인식하는구나 하는 경각심이 들지 않을까.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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