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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배터리 ‘열 폭주’에 대피 못해… 사망자 전원 2층서 발견

[화성 화재 참사]

배터리 포장 작업 과정서 화재 발생
15초 만에 연기로 2층 전체 뒤덮여
벤젠·불산 배출… 내부 진입 늦어져

경기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리튬전지 제조공장 아리셀 화재 현장에서 24일 오후 구급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해 이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대규모 사상자를 낸 경기 화성시 리튬배터리 제조공장 화재는 보관돼 있던 리튬배터리에서 일어난 불이 폭발적으로 확산한 것으로 파악됐다. 배터리 화재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열 폭주(thermal runaway)’ 현상으로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발화 지점으로 지목된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는 3만5000여개의 원통형 리튬전지가 보관돼 있었다.

소방 당국이 공장 내부 CCTV를 확인한 결과 3동 2층에서 배터리 포장 작업을 하던 중 불이 난 것으로 나타났다. CCTV 영상에 따르면 화재 발생 후 불과 15초 만에 2층 작업실이 연기로 뒤덮였다. 조선호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처음에는 배터리 부분에서 작은 흰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연기가 급격하게 퍼졌다”며 “작업자들은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는 듯하다가 소화기를 가져와서 진화를 시도했으나 주변에 리튬이 있다 보니까 소화 능력이 잘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진영 화성소방서 재난예방과장은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서 보관 중이던 리튬배터리 셀 1개에서 폭발적으로 연소가 됐다는 목격자 진술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리튬배터리는 열을 받으면 발생 에너지를 제어하지 못하고 열을 증폭하는 열 폭주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열 폭주는 외부 충격에 의해 배터리 내부 온도가 단 몇 분 만에 1000도 이상 증가하는 현상이다. 화재 시 극심한 고열이 발생하고, 인근 배터리에 고열이 전달되며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배터리 내부에서 계속 열이 발생해 불이 꺼진 것처럼 보여도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날 화재는 다량의 화염·연기와 함께 폭발이 수시간에 걸쳐 연달아 일어났다.

화재가 급속도로 번지면서 직원들은 대피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시신이 주로 발견된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는 1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었지만, 직원들은 미처 내려가지 못했다. 소방 관계자는 “시신은 2층 곳곳에,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2층에는) 지상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는데, 그쪽으로 탈출하지 못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리튬배터리 폭발 과정에서 벤젠과 불산 등 유독가스가 다량 배출된 점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목됐다. 고농도 불산은 접촉 시 피부가 녹아버리고, 벤젠은 호흡곤란 현상을 유발한다. 유독가스 때문에 현장 소방대원들도 공장 내부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내부 수색이 지연됐다. 혹시 모를 폭발에 대비하며 진압하다 보니 화재 발생 후 5시간 가까이 지난 오후 3시10분쯤에야 초진에 성공했다.

리튬배터리는 금속성 물질이라 물을 뿌리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불을 끌 수 없다. 물을 뿌리면 수소가스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불이 더 커지는 역효과가 나타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리튬전지는 일반 목재 화재보다 진화가 수십 배 어렵다”며 “마른 모래, 팽창 질소 등 특수한 소화약제를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날 화재의 경우 공장 배터리에 리튬이 소량 포함돼 있어 물을 활용한 진압이 이뤄졌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국내 리튬배터리 공장에 가스감지기 설치 등이 미흡하다”고 말했다.

화재 현장은 매캐한 연기와 이따금 터져 나오는 ‘펑’ 하는 폭발음으로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불이 난 공장 외벽은 시커멓게 그을리고 열기를 못 이긴 자재들이 흉측하게 녹아내렸다. 화재 현장을 찾은 실종자 가족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울음을 삼켰다.

경찰과 검찰은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한 전담 수사기구를 꾸렸다. 경기남부경찰청은 광역수사단장을 본부장으로 한 130여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편성했다.

신재희 기자, 화성=강희청 한웅희 김승연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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