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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수술 힘든 췌장암·간암도 중입자 치료… “4기 환자는 불가”

활용 영역 넓어진 중입자 치료기

금웅섭(오른쪽) 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등 의료진이 췌장암 환자의 중입자 치료를 준비하고 있다.

연세암병원, 회전형 장비 본격 가동
입자 방사선 활용, 암세포 정밀 타격
두경부암 등 10여종도 치료 계획

췌장암 3기 김모(47)씨는 지난달 말 연세암병원에서 ‘회전형 중입자 치료’를 시작했다. 카우치(침상)에 똑바로 누워 있으면 치료기가 환자의 호흡에 맞춰 자동으로 위·아래, 좌·우로 움직이며 췌장의 병변에 중입자를 쏴서 암세포만 정밀 타격하는 치료법이다. 중입자는 무거운 탄소 원소를 싱크로트론이라는 장비에서 초당 지구 5바퀴 도는 빠르기(빛 속도의 70%)로 가속해 암세포의 사멸력을 높인 입자 방사선이다. 김씨는 이런 치료를 주 4회씩 3주에 걸쳐 모두 12차례 받았다. 김씨는 “치료받는 동안 통증이나 부작용 같은 불편함은 없었다. 치료를 하는지 안 하는지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3년 전 수술 불가능 상태로 췌장암 진단을 받은 김씨는 24차례 항암치료를 받았으나 암은 더 진행됐다. 약제를 바꿔 항암을 진행하던 중 난치성 암의 대안으로 떠오른 중입자 치료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김씨는 한 달 뒤 종양 수치와 크기 검사를 받을 예정이다. 의료진은 “중입자 치료의 반응은 천천히 나타나기 때문에 당장 효과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3개월 후 안정화 혹은 악화하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췌장·간·폐 등 난치암 치료 돌입

지난해 국내 최초로 중입자 치료를 시작한 연세암병원이 전립선암에 이어 난치암인 췌장암과 간암 치료에 들어갔다. 회전형 중입자 치료기의 본격 가동에 따른 것이다. 이 병원은 전립선암 치료용 고정형 치료기 1대와 회전형 치료기 2대를 도입했다. 좌·우에서만 중입자를 쏘는 고정형과 달리, 회전형 치료기는 360도 어느 각도에서도 중입자 조사(照射)가 가능하다. 치료기 안에 환자가 누우면 가장 적합한 각도로 치료기가 돌면서 치료 계획에 따라 암세포를 정확히 타격한다. 장기가 호흡과 중력에 따라 움직이고 주변에 다른 장기가 있어 다양한 각도로 조사해야 하는 췌장과 간, 폐 등의 암 치료에 알맞다.

중입자치료센터장인 금웅섭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24일 “기존 고정형 치료기로 하루 15명의 전립선암, 이번에 가동한 1대의 회전형 치료기로 하루 8명의 췌장·간암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이달 안에 폐암 치료도 시작한다”면서 “내년 초 회전형 치료기 2대를 풀 가동하면 하루 50명, 연간 1000명의 암 환자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1일 기준으로 각각 1명의 췌장암과 간암 환자 치료를 마쳤고 췌장암 환자 5명이 치료 중이다. 또 췌장암 53명, 간암 2명, 폐암 5명이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병원에 따르면 췌장암과 간암의 경우 다른 장기로 원격 전이된 4기 환자들도 치료를 받으려 많이 찾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금 교수는 “중입자 치료는 원격 전이가 없는 3기 내 환자들에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4기 환자들은 치료 대상이 아니라고 얘기하면 크게 실망해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전했다.

췌장암은 국내 5년 생존율이 15.9%(2016~2021년 기준)에 불과하다. 췌장은 몸 깊은 곳에 있어 암이 생기더라도 증상이 거의 없어 조기 진단이 힘들다. 수술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재발률이 40~80%로 높다. 또 암세포의 공격성이 커 인접 장기를 따라 퍼지는 속도도 빨라 치료가 어려운 암 중 하나다.

췌장암이 비교적 초기(1·2기)에 진단되면 수술을 먼저 고려한다. 만약 진단이 늦어 국소 진행(혈관 침범 등)됐거나 원격 전이가 동반되면 항암치료를 우선 시행한다. 수술이 어려운 국소 진행 췌장암이나 수술 후 잔존 암이 있을 땐 방사선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췌장은 방사선에 예민한 위·소장 등 정상 장기들에 둘러싸여 있고 호흡에 따라 위치 변동이 커서 기존 방사선 치료(X선)로는 인접 장기를 피하면서 종양에만 정확히 고선량을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 금 교수는 “중입자 치료는 암의 혈관 침범, 기저질환 등으로 수술이 힘든 국소 진행성 환자(3기)가 주요 타깃”이라며 “3기라도 암 덩어리가 혈관 말고 십이지장·위·소장 등에 딱 달라붙어 있는 경우엔 치료 대상이 아니다”고 했다. 경계성 절제 가능 혹은 절제 가능 췌장암에서 수술 전 암 주변의 미세 암세포들을 제어하고 완전 절제율을 높이기 위해 중입자 치료를 시행할 수도 있다.

한국보다 앞서 중입자 치료를 도입한 일본의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QST)에 따르면 수술 불가능한 췌장암 환자의 경우 항암제와 중입자 치료를 병행했을 때 2년 국소 제어율(치료 부위 암이 재발하지 않는 확률)이 80%까지 향상됐다. 중입자 치료 후 2년 생존율이 56%라는 성적도 나오고 있다. 기존 X선 치료의 경우 2년 생존율 30%, 양성자 치료 시 30~50%보다 높은 수치다.

하반기 두경부암 등 10여종 치료 확대

간암 또한 방사선 치료가 까다롭다. 간에는 신경세포가 적은 탓에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해 암이 진행된 상태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간경화 등으로 간 기능이 떨어져 일반 방사선 치료는 간독성 위험이 크다. 중입자 치료는 정상 조직과 세포는 피하고 암세포에만 고선량 빔을 집중하여 조사하는 특성으로, 부작용은 줄이고 치료 효과는 높일 수 있다.

일본 군마대병원에서 중입자 치료를 받은 환자의 2년 국소 제어율은 92.3%에 달했다. 암이 4㎝ 이상 큰 경우에도 2년 국소 제어율은 86.7%였고 2년 생존율은 68.3%로 높았다. 간암 중입자 치료 담당인 이익재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간암의 경우 암 위치가 따라 4회 혹은 12회 치료받을 수 있다. 암 주변에 위·장 등 장기가 가까이 있으면 세기를 조절해 여러 번 쏜다. 조사 횟수를 나눠 정상 장기의 회복 시간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격 전이가 없는 국소 진행성 간암(3기) 환자가 주 치료 대상이다. 기존 방사선 치료로는 충분한 선량(에너지)을 안전하게 주기 어려웠던 위치의 간암이나 간기능 저하로 인한 간부전 위험이 있을 경우 중입자 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

금 센터장은 “췌장암, 간암과 같이 발견이 늦어 암이 진행된 채로 진단돼 수술이 어려운 경우 환자 상태에 따라선 항암 치료 등으로 암 크기를 줄인 뒤 중입자 치료를 병행해 치료 효과를 높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연세암병원은 이달 안에 폐암 환자 치료에 들어가고 하반기에는 두경부암(점막 흑색종, 선양낭성암종 등), 골육종, 재발성 직장암 등 10여종의 국소 진행·재발암으로 치료를 확대할 계획이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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