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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방해로 뒤늦게 시행… ‘임종실’ 시민이 지켜야

[박중철의 ‘좋은 죽음을 위하여’] ⑫ 임종실 의무 설치 정착될까


8월 1일부터 병상 300개 이상의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은 반드시 임종실을 설치해야 한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은 2004년 처음 발의됐지만 국회의 미온적 태도와 병원들의 반대로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민 75%가 병원에서 죽음을 맞고 있다. 병원은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임종 장소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과 작별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병원들은 중환자실을 늘려 임종 전까지 적극적인 의학적 처치를 한다. 대신 치료를 중단하고 평온하게 마지막을 보낼 수 있는 호스피스 병동이나 임종실 설치는 계속 피해 왔다.

2년 전 의사 조력자살 법제화 요구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국회는 20년 만에 부랴부랴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엄밀히 말하자면 20년간 국회는 직무 유기를 해 온 것이다.

그러나 갈 길은 순탄치 않다. 병원 경영자들의 반대로 임종실 설치 대상은 200병상 이상 병원(795개)으로 후퇴했다가, 최종적으로 300병상 이상 병원(264개)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규모와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임종실은 단 1개다. 병원들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없고 설치 비용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한다는 이유였다.

의대 정원 증원도 강제로 밀어붙이는 정부의 태도와 사뭇 다르다. 임종실을 설치해야 하는 병원들의 꼼수도 시작됐다. 임종실을 감염병 격리실 등 다른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계속됐다.

국민은 의사들이 돈에 눈이 멀어 저런다고 비난하겠지만, 명확히 알아야 할 것은 병원의 주인은 의사가 아니다. 세브란스 같은 사립대 병원의 결정권자는 대학 재단이며 아산병원은 현대그룹, 삼성병원은 삼성그룹이고, 서울대병원 같은 국립대 병원은 정부가 주인이다. 현장의 의사들은 오래전부터 임종실 설치를 요구해 왔지만 경영자들은 수익을 이유로 호스피스 병동과 임종실 설치를 외면해 왔다.

임종실 의무 설치는 이제 불과 한 달 정도를 남겨뒀다. 이 법안이 얼마나 실효성 있을지에 대한 책임은 정부와 정치인들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국민 여러분에게 있다. 권리는 저절로 보장되지 않는다. 깨어있지 않으면 늘 정치인과 경영자들의 노리개가 될 것이다.

박중철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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