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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페스티벌에는 사람이 흐른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환갑 넘어도 명절처럼 가고
싶은 데를 고른다면 집처럼
편안한 이 페스티벌 손들 것

지난달 스페인에 다녀왔다. 목적은 단 하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 ‘프리마베라 사운드’에 다녀오기 위해서였다. 10년 만의 방문이었다. 10년 전의 목적은 카에타누 벨로주였다. 1942년생으로 고령인 탓에 자국인 브라질 밖에서 공연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그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공연과 페스티벌은 아주 좋았다. ‘나만 본 가수’를 만들고 싶다는 야망은 그가 2016년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을 찾으면서 산산이 부서졌지만 말이다.

다시 찾은 그곳은 10년 전과 거짓말처럼 똑같았다. 5월 말의 바르셀로나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질투 날 정도로 아름답다. 햇볕은 따갑고 바람은 시원하다. 해변에서 뜨거운 볕에 등을 지지다 과하다 싶으면 한 뼘 옆 그늘로 뒹굴 몸을 굴린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너른 수평선을 등진 무대는 개인적으로 프리마베라에서 가장 좋아하는 무대다. 열과 성을 다해 연주하는 음악가와 그 음악을 온몸으로 즐길 준비가 돼 있는 관객 그리고 그 모두를 감싸안고 있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음악이 주는 사랑과 평화가 이런 것인 듯싶다.

말만 들어서는 지상천국 같은 ‘프리마베라 사운드’에는 그러나 장점이자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바로 자유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관객들이다. 페스티벌 주최자가 이보다 더 원하는 게 있을까 싶은 필수요소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사정이 좀 다르다. 자유로워도 너무 자유롭고, 열정적이어도 너무 열정적인 탓이다. 총 사흘간 모이는 수십만명의 관객은 정말 많이 마시고, 많이 피우고, 많이 말한다. 종이 한 장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선 입석에서도 담배 연기가 곳곳에서 피어오른다. 옆 사람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을 정도의 간격이 생기면 주위에 누가 있건 자신들만의 토크쇼 타임이 시작된다. 10년 전에도 그랬고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이걸 잊고 여기에 다시 오다니. 첫날 헤드라이너 펄프(Pulp) 공연을 보며 받은 충격은 페스티벌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겨우 가셨다. R&B 아티스트 시저(SZA) 노래에 맞춰 곳곳에서 둥글고 작은 파티를 열고 있는 관객들이 귀여워 보일 정도였으니, 이래서 사람을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적응하니 안녕이라 아쉬운 이별을 뒤로하고 돌아온 한국에서 또 다른 페스티벌을 찾았다. 철원에서 열리는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이었다. 이곳도 한국에서 열정과 자유를 말할 때 둘째가라면 서러운 관객만 모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게 같은 열정과 자유를 부르짖건만 이렇게 쾌적할 수가 없었다. 같은 핏줄로 태어나 같은 땅을 공유하며 자란 이들이 모였기 때문일까. 격렬한 슬램과 서클핏이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나만의 사랑방을 만드는 이들도 얼마든지 존재했지만 서로에 대한 숨 쉬는 듯한 배려를 매 순간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덕분에 출연 아티스트만 보자면 비교할 수 없는 라인업이었지만 마치 이곳이 내 집인 것처럼 편안했다. 이것이 내가 음악으로 찾던 사랑과 평화인가 싶었다.

두 곳을 오가며 문득 결국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나를 안다. 나는 언젠가 그 모든 소음과 연기를 잊고 화려한 라인업과 천혜의 환경에 혹해 바르셀로나를 또 찾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환갑이 넘어도 매해 명절처럼 가고 싶은 페스티벌을 고르라고 한다면 큰 고민 없이 ‘DMZ 피스트레인’의 손을 들 것이다. 다름 아닌 그곳에 모인 사람들 때문이다. 무대 위의 사람만큼 무대 아래의 사람이 중요한 게 페스티벌이다. 누구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를 택해야 하는 인생극장은 이런 작은 삶의 순간에도 여지없이 나답게 펼쳐진다. 물론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다. 매년 ‘프리마베라 사운드’에 보내주겠다는 익명 독지가의 제안도 언제든 환영이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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