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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해피엔딩을 꿈꾸며

김유나 사회부 차장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4개월이 지났다. 이 사안을 취재해 온 기자들은 물론이고 아마 전공의조차 사태가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을 것이다. 부모님이 주는 용돈으로 생계 고민 없이 “1년은 쉴래요”라고 말하는 전공의가 다수라지만, 청춘의 페이지가 이렇게 텅 비어버린 채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거라 믿는다. 애초에 누군가를 굴복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으니 ‘싸움’이라고 부르긴 싫지만 어쨌든 이 지난한 싸움은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지난달 30일 인천 계양구에 있는 세종병원을 찾았다. 누구도 생사의 경계라는 게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없겠으나 그 문턱에서 새로운 심장을 이식한 이들을 만났다. 옥진우(21)씨와 한윤필(66)씨였다. “힘들면 인터뷰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두 사람은 말을 하다 차오르는 숨을 고르면서도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김경희 선생님이 아니면 난 살지 못했습니다”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의사라면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고 특히 환자를 살리려 애쓰는 일이 당연하지만 그게 당연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를 떠안았다가 겪을 후일이 두려워서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고 이후 의료사고에 대한 의사들의 두려움이 커진 탓도 있겠지만, 여러 의료진이 매달려 위급한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일에 계산기를 두드리는 병원도 있기 때문이다. 30분 남짓한 시간의 인터뷰 중에도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은 3분에 한 번꼴로 호출을 받고 자리를 비웠다. 다른 의사와 간호사들이 환자 상태를 수시로 센터장에게 묻고 확인했다. 김 센터장은 허탈한 듯 웃으며 “12년째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안 하면 다른 사람들이 교대할 때 실수할 수도 있고요. 그게 반복되면 환자가 죽습니다”라고 말했다.

직접 환자를 데리러 가고 3일간 밤을 새우며 환자 회복을 지켜보는 일. 환자들은 일종의 ‘미담’으로 김 센터장과의 여러 일화를 소개했지만, 기사에 소개하고 싶지 않았다. 제도가 아닌, 개인의 희생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을 정부도 환자도 당연시 여겨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미담의 대부분은 상급종합병원이었다면 전공의와 전임의들이 하는 일이었다. 2차 병원인 세종병원에도 능력 있고 믿을 만한 간호사와 의사들이 있지만 결국 3차 병원의 스카우트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특히 3차 병원으로 갈수록 전공의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의사로서는 잡일이 훨씬 줄어들고 보상은 더 많다.

다시 전공의 집단행동 문제로 돌아가 본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전공의 이탈 이후 더 어려움을 느끼는 건 전공의 비중이 높았던 탓에 이들의 공백을 메우는 게 더 힘들게 느껴지기 때문일 거라는 의료계 지적도 있다. 값싼 노동력으로 부리던 이들의 공백이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수들의 폭언과 군대식 조직 문화는 예외로 두더라도 일의 보람을 느낄 새도 없이 몰아치는 업무는 전공의들이 겪는 공통된 문제였다. 애초에 기성 의사들이 나눠서 해야 할 몫이었고 병원이 전문의를 추가 고용해 덜어줘야 할 일이었다. 정부는 반드시 전공의 수련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미 시범사업은 시작됐다.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며 전공의가 의심만으로 환자를 외면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현장에 돌아와 바뀌려는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하며 목소리를 내야 한다. 만약 의심대로 현장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땐 국민이 함께 전공의 편에 설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김유나 사회부 차장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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