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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고둥의 맛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민물처럼 선한 꿈을 꾸는 깊은 밤/ 고둥들이 다닥다닥 돌에 올라선다.’ 문태준 시인의 ‘밤과 고둥’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변변한 간식이 없던 때, 삶은 다슬기는 여름밤의 별미였다. 나는 언니들과 함께 양재기를 옆구리에 끼고 고둥을 잡았다. 손전등을 비춰가며, 이끼 껴서 미끌미끌한 돌을 뒤집었다. 여름밤 냇가의 물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고, 차가운 비단이 종아리를 스치듯 공기도 선선했다.

시인의 말대로 고둥은 돌 위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닥다닥 올라서’ 있었다. 대개 어두운 갈색이었는데, 더러는 회색에 얼룩덜룩한 반점이 박힌 것도 있었다. 잘아서 손가락 마디 하나를 넘지 않았다. 종류에 따라 지역마다 재첩이나 올갱이, 다슬기 등으로 부르는 모양인데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뚜렷한 구분 없이 ‘고둥’이나 ‘다슬기’라고 불렀다.

엄마는 고둥을 삶기 전에 부러 캄캄한 곳에 두었다. 어두운 곳에서 고둥이 속살을 내밀기 때문이다. 그때 펄펄 끓는 물을 부으면 속살이 나온 상태로 익기 때문에 고둥을 빼먹기 수월했다. 고둥의 처지에서 보면 잔인한 인간의 지혜인 셈이었다.

고둥 먹기의 재미는 바로 ‘속살이 안 끊기게 빼먹기’였다. 자칫하면 중간에 끊어지기 때문에 약간의 집중력과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했다. 언니와 나는 바늘을 살살 돌려가며 누가 더 깔끔하게 속살을 빼내는지 내기했다. 그마저 시틋해지면 고둥의 아랫부분을 깨물어 구멍을 낸 뒤 홉, 하고 빨아 먹었다. 그 맛이 생각날 때면 나는 가끔 다슬기 해장국집에 간다. 부추와 홍고추를 넣고 한소끔 끓여낸 개운한 국물, 뜨거운 국물로 속을 달래니 피로가 가신다.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끼며, 나는 잠시 과거로 돌아간다. 뜨거운 돌을 귀에 대고 깨금발로 뛰면서, 귓물을 빼던 유년 시절로. 미루나무가 푸르게 타오르던 여름날의 냇가. 혼곤한 낮잠처럼 어느새 지나가 버린 시간 속으로.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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