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전체기사

‘양·질·력’ 압도적인 사모펀드… 韓기업은 ‘손쉬운 먹잇감’

[사모펀드 대해부]
공격 받은 국내사 4년 새 9.6배 급증
적대적 행동력 갈수록 대담해져
현재론 자사주 매입 외 ‘수단’ 없어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사모펀드들은 양과 질은 물론 행동력 측면에서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들 펀드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행동주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행동주의펀드와 경계가 모호해지는 게 최근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특히 지배구조에 취약한 한국 기업들은 ‘행동주의펀드화’하는 일부 사모펀드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 거버넌스 리서치업체 딜리전트 마켓 인텔리전스가 지난 2월 발간한 ‘2024년 주주 행동주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을 받은 한국 기업 수는 2019년 8개사에서 지난해 77개사로 약 9.6배 급증했다. 한국은 미국(550개사)과 일본(103개사)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을 많이 받은 나라가 됐다. 조사 대상 23개국에서 총 951개 회사가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2년보다 8.7%, 2021년 대비 23% 증가한 수치다.


‘울프팩’(Wolf Pack·늑대 무리) 전략 같은 합동 공격은 눈여겨볼 최근 추세 중 하나다. 이는 행동주의펀드 여러 곳이 연합해 타깃 기업을 동시에 공격하는 전략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삼성물산이 주주총회 전후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당시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시티오브런던인베스트먼트 등 행동주의펀드 5곳은 삼성물산에 5000억원의 자사주 매입과 보통주 1주당 4500원·우선주 1주당 4550원의 고배당을 요구하는 주주 제안을 했다. 당시 삼성물산은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행동주의펀드에 쏠릴 가능성에 대비해 직접 기관투자가를 일일이 찾아가 설득하는 작업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행동주의펀드의 울프팩 전략은 주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업계에서는 비슷한 유형의 기업 압박이 매년 반복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의 경우 글로벌 행동주의펀드의 집중 공격에 시달리면서 아예 회사를 자진 상장폐지하는 사례도 나온다. 비상장으로 전환한 일본 기업은 2015년 47개사에서 2022년 135개사로 3배 가까이 늘었다. 김수연 법무법인 광장 연구위원은 “한국 자본시장은 참여자의 자율성보다 정부 규제가 강하고 여기에 자본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도 정부 영향력 아래에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행동주의펀드 압박까지 심화하면 기업공개(IPO) 자체를 기피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사모펀드들이 기업을 상대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거나 경영권을 위협하는 사례는 늘어날 공산이 크다. 현재로선 자사주 매입 외에 별다른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18일 “미국과 달리 한국은 기업 경영권에 대한 보호가 미비하다”며 “국내에서는 차등의결권과 같은 기업 방어를 위한 제도가 없어 자체적으로 지배구조를 관리해야만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