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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인간은 왜 다리를 떠는가

최민석 소설가


알아보기 전에는 내 경력의 파괴자였던 이도,
연유를 들여다보니 이해하게 됐다

스페인어를 공부한 지 4년이 되자 꿈이 생겼다. 서어서문학을 전공해 제2의 삶을 살고 싶다는 만학도의 꿈이. 입학 자격을 갖추고자 야심 찬 포부로 스페인어 시험을 치러 갔다. 하나 간과한 게 있었다. 인생은 한 번에 깨지는 유리잔 같다는 사실 말이다.

첫 시간인 듣기 영역이 시작됐다. 차분했던 옆자리 학생이 갑자기 강도 7의 지진을 겪는 위태로운 집처럼 덜덜덜 다리를 떨었다. 거대한 양팔을 흔드는 공기인형처럼 내 주의를 모조리 강탈한 것이다. 고민하다, 문제의 절반을 놓치고서 손을 들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온 감독관에게 제스처로 옆 학생이 다리를 떤다고 알리는 사이, 또 몇 문제가 내 지난 청춘처럼 흘렀다.

마침내 이해한 감독관이 그 학생을 보니, 갑자기 유배 중에도 집필에 집중했던 정약용 선생처럼 미동도 않고 문제를 푸는 것 아닌가. 영화에서 ‘귀신이야’라고 외쳤을 때 친구가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상황처럼. 결국 나만 시험 분위기 흐리는 양치기 중년이 됐다. 참담한 심정에 나머지 문제도 놓쳤다. 그 학생의 다리 떨림은 내 꿈을 파괴한 원자폭탄, 내 삶을 뒤흔든 토네이도, 내 미래를 날려버린 허리케인이었다.

그래서 살펴봤다. ‘대체 인간은 다리를 왜 떠는가.’ ‘하지불안증후군’이라 불리는 이 증상은 주로 마그네슘과 미네랄이 결핍됐을 때 발현한다. 한자리에 오래 앉아 혈액순환이 안 된다. 이를 말단 신경이 인식해 다리가 저려 오고, 이 때문에 혈액순환을 위해 무의식중에 다리를 떤다. 동물학자들은 불안 상태에 빠진 인간이 태아 때 자궁 안에서 느끼던 모체의 심장박동을 다시 느끼기 위해 다리를 떤다고 한다.

하지불안증후군 환자의 30%는 유전 때문에 앓는데, 이는 세대에 걸쳐 유전될수록 그 증상이 더 심해지고 치료가 더 어려워진다. 따라서 그 학생은 적어도 조선시대부터 조상들이 하지불안증후군을 앓아온 슬프고 엄중한 가족력을 가졌을 것으로 사료된다. 아울러 ADHD(주의력부족 과잉행동장애)로 고생하는 이가 무언가에 집중하려고 떨기도 한다.

그들은 주로 세 방식으로 다리를 떤다. 1)양 무릎을 좌우로, 2)발끝은 땅에 붙이고 뒤꿈치를 상하로, 3)반대로 뒤꿈치를 붙인 채 앞부분을 상하로. 옆자리 학생은 1)과 2)를 번갈아 구사했기에, 해당 분야 연구자에게 소개해주고픈 실로 희소한 인물이었다. 아울러 2번 방식은 비장근 운동이라 하는데, 휴스턴대학교의 마크 해밀턴 교수 연구팀은 이 운동이 걷기와 간헐적 단식보다 혈당 조절과 신진대사 증가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식간 지방 연소를 두 배로 증가시키고, 다리 떨기를 매일 꾸준히 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300㎉를 더 소모한다. 덧붙여 6월 12일부터 4일간 지하철 3호선·6호선 승객 400여명, 그리고 마포구 합정동 소재 A교회의 고등부, 성인 예배 참석자 100여명을 직접 관찰한 결과 10대와 20대 남성군이 다리를 많이 떨었다. 이 점은 바람에 떠도는 민간 학설, 즉 수컷은 다른 생물의 습격에 대비해 다리 근육을 대기 상태로 활성화한다는 주장으로 갈음한다.

생각해 본다. 내 옆자리의 여학생은 6년 전 내 텝스 시험을 파괴한 남자의 여동생일까. 아니면 간헐적 단식보다 효과 좋다는 주장에 따라 시험 치는 와중에도 운동을 병행하는, 일분일초까지도 충일하게 사는 이일까, 아니면 ADHD를 앓아서 집중력을 끌어올리려 최선을 다했던 걸까, 혹시 성적을 못 받으면 졸업도 취업도 못할 거라는 불안에 떠는 가련한 젊은이일까. 그래서 우울증 때문에 복용한 항우울제의 부작용을 앓는 걸까. 알아보기 전에는 내 경력의 파괴자였던 이도, 연유를 들여다보니 이해하게 됐다. 즉 앎이 타인을 이해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게 이 글을 쓴 이유다. 비록 만학의 꿈은 먼지처럼 날아갔지만… 흑흑.

최민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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