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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또 다른 세상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생명체는 자신의 감각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특히 시각은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감각이다. 동물의 눈에 들어온 빛은 망막에 닿는다. 망막에는 빛과 어둠의 차이를 감지하는 간상체와 색을 지각하는 원추체라는 두 가지 형태의 광(光) 수용체가 있다. 인간과 유인원은 적색, 녹색, 청색을 담당하는 각각의 원추체를 갖고 있는데 이런 삼색시 덕분에 다양한 색깔 조합을 인식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프레스턴의 저서 ‘동물들이 세계를 보는 방식’은 동물의 시각이 인간의 시각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새는 적색, 녹색, 청색과 더불어 자외선까지 한 번에 볼 수 있다. 개, 고양이, 사슴 등 대부분의 육상 포유류는 녹색과 청색만을 인지하며 적색 계열의 색상을 보지 못한다. 호랑이는 자신의 털을 주황색으로 보지 못하고 먹잇감인 사슴도 호랑이의 털을 풀과 같은 녹색으로 인지한다. 개와 고양이의 세상에서는 담장에 핀 빨간 장미는 존재하지 않으며 붉게 물든 가을 산도 녹음이 푸른 여름 산과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육상 포유류가 적색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서식 환경과 관련 있다. 숲이나 초원에서 살아가는 동물에게는 녹색과 청색을 구별하는 능력이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생명체는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독특한 시각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각각의 생명체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세계는 인간의 감각에 맞춰 해석된 하나의 버전일 뿐 무수히 많은 다른 버전의 세계가 존재한다. 우리는 여러 겹으로 중첩된 세계 속에서 고작 하나의 세상을 만난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단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 보는 동시에 볼 수 없는 풍경이 존재한다는 인식은 타성에 젖은 감각을 깨우고 세상의 모습을 다채롭게 상상하는 자극으로 이어졌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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