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화한 토종 금융메기… 기업 유동성·생태계 좌지우지

[사모펀드 대해부] ① 사모펀드 전성시대


현재 대한민국의 ‘최고 부자’는 누구일까. 보통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나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재계 1, 2위 그룹 총수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다. 그는 지난해 포브스가 선정한 한국 최고 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김 회장은 사모펀드 투자로 풍부한 유동성을 확보하면서 대기업보다 자산이 더 많은 ‘재벌 위 재벌’ 반열에 올랐다. 김 회장은 2005년 국내 첫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를 설립하면서 자산을 불렸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사모펀드는 규제를 받지 않으면서도 대형 거래 및 구조조정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순식간에 동원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실상 유일한 존재가 됐다. 이 영향으로 토종 사모펀드들은 세를 급격히 불릴 수 있었다.

국내를 넘어 아시아 1위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는 특히 기업을 상대로 한 굵직한 인수·합병(M&A)을 단행하면서 덩치를 불렸다. 기업이 성장성을 보이면 1조원 이상을 단번에 투자하며 대기업보다 더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MBK파트너스는 2016년 두산공작기계를 경영난에 빠진 두산인프라코어로부터 약 1조1300억원에 인수했다. 이처럼 국내 주요 사모펀드는 기업들의 유동성 흐름을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국내 기관 전용 사모펀드는 1098개로 전년 대비 48개 증가(4.6%)했다. 같은 기간 연기금 등 출자자(LP)가 펀드를 운용하는 위탁운용사(GP)에 돈을 주겠다고 확약한 금액인 약정액은 125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행액은 97조1000억원 수준이다.


지난해에도 국내 사모펀드 규모는 우상향 추세가 이어졌다. 약정액의 경우 지난해 말 130조원 중반대로 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행액은 100조원에 육박했고, 기관 전용 사모펀드 수 역시 지난해 말 1100개를 돌파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관 전용 사모펀드는 연기금, 금융회사 등 국내외 기관투자가만 돈을 맡길 수 있는 대형 펀드다. 사업구조 및 지배구조 개선 등을 위해 지분증권 등에 투자한다. 국내에서 가장 큰 사모펀드 운용사인 한앤컴퍼니의 지난해 말 기준 총 약정액은 13조6052억원이다. 이어 2위 MBK파트너스(11조8413억원), 3위 스틱인베스트먼트(6조4757억원), 4위 IMM프라이빗에쿼티(6조4709억원), 5위 IMM인베스트먼트(5조5879억원) 순이었다. 웬만한 대기업 매출 규모를 뛰어넘는다.


국내 사모펀드가 집행하는 투자도 천문학적인 규모다. 삼일PwC경영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한 해에만 사모펀드는 국내외 594개 기업에 총 36조9000억원의 투자를 집행했다. 국내 500대 기업 중 연구·개발(R&D) 비용을 공시한 224곳의 2023년 한 해 동안의 R&D 투자액이 73조4238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사모펀드는 이미 국내 기업 투자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에는 소수의 사모펀드가 재벌처럼 덩치를 키우며 생태계를 장악하는 쏠림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재계에서는 사모펀드로 막대한 자본이 쏠리면서 대기업 투자에 활용될 유동성이 줄고 대기업 경영권까지 위태로워지는 부작용이 짙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모펀드가 대기업 구조조정에 참여하면서 직접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넘어 구주 및 신주 인수, 산업통합이나 회생기업 인수 등 경영 주도권을 쥐는 방식을 택하면서다. 이남우 한국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국내 대기업은 적은 자본으로 많은 자회사를 컨트롤하는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어 경영상 문제가 발생하면 사모펀드의 유동성 공급에 기댈 수밖에 없다”면서 “사모펀드는 틈새를 파고들어 재벌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계속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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