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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필통 속 일회용 전자담배… 10대 자녀 ‘몰래 흡연’에 부모는 골치

[담배 없는 세상] 인터넷맘카페서 고민 토로

예쁘고 세련된 디자인의 가향 담배
국내 청소년층에 깊숙이 파고들어

편의점에 진열, 흡연 호기심 자극
성인 70%, 화장품·장난감으로 착각

담배 정의서 빠져… “흡연 유도하는
업계의 위선적 마케팅 인지해야”

다수의 인터넷 맘 카페에 최근 10대 자녀들의 액상 전자담배 소지와 흡연을 우려하는 부모들 상담글이 올라오고 있다.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가 발견된 학생의 필통(왼쪽)과 니코틴 액상이 든 중학생 딸의 파우치. 인터넷 맘 카페 캡처

인터넷 커뮤니티 ‘맘스홀릭베이비’의 40대 이상 수다방에 지난달 초 ‘필통 속 담배…’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주변 엄마들한테 요즘 학생들이 일회용 담배를 많이 피운다고 들었는데. 저희 아들 필통에서도 나왔네요. 도대체 이건 어디서 어떻게 구매하는 건지. 요즘 이게 학생들 사이에 유행인 걸까요?”라며 조언을 구했다. 10대 자녀의 학용품 속에서 우연히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를 발견하고는 당혹스러워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게시글에는 “뭐가 담배예요? 빨간 기계요?” “빨간 게 담배라고요? 참 이상한 방법으로 나오네요” “담배 같이 안 생겨서 아이들이 더 피울 것 같아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 소위 ‘핫’한 신종 담배 제품에 대한 부모들 인지도가 매우 낮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녀 신종 담배 흡연에 골머리

또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 ‘광주맘들의 행복 만들기’에 올라온 글은 “중학생 딸 파우치에서 담배로 보이는 물건을 발견했다”며 “혼냈더니 다른 애들도 다 하는 건데, 왜 자기한테만 뭐라 하냐고 오히려 화를 내고 방에 들어가 계속 안 나오고 있다”는 고충을 털어놨다. 한 네티즌은 댓글에서 “저희 딸도 중학생. 얘기 들어보면 많다고 해요. 당당하게 학교 앞에서도 피운다고…”라며 공감을 나타냈다. 예쁘고 세련된 디자인의 액상·궐련형 전자담배, 다양한 맛과 향을 넣은 가향 담배가 청소년층에 얼마나 깊게 파고들어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는 최근 유명 인터넷 맘카페들을 모니터링한 결과, 이들 사례처럼 부모들이 10대 자녀의 신종 담배 흡연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17일 밝혔다. 규제 사각지대인 액상 전자담배를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문제뿐 아니라 한탄과 분노가 읽혔다. 현재 국내 액상 전자담배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합성 니코틴 제품(대부분 가향 담배)은 현행법상 담배의 정의에 포함돼 있지 않아서 흡연 경고 그림·문구 표시는 물론 각종 세금·부과금에서 배제돼 있다. 온·오프라인 광고판촉도 ‘규제 밖’이어서 청소년들에 무방비 노출된다.

‘강북노원도봉맘 모여라’ 커뮤니티에 한 네티즌은 ‘요즘 담배는 인터넷으로 살 수 있나 보네요’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의 온라인 쇼핑몰 주문·배송 사진들을 올렸다. 게시자는 “버젓이 저렇게 인터넷으로 구매 가능하니 놀이터, 공원 같은 데서 교복 입은 아이들이 액상담배 같은 걸 피우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는 것 같다”고 했다. 댓글에는 “저건 좀 아닌데, 몰랐다” “말도 안 된다” 등의 격한 반응이 쏟아졌다.

‘레몬 테라스’ 맘카페에는 ‘편의점 진열대 저만 신경 쓰이나요’ 제목의 글과 함께 편의점 껌 판매대 옆에 일회용 액상담배가 빼곡히 진열돼 있는 사진이 게시됐다. 궐련(일반 담배)은 소매점 계산대 뒤 지정 공간에 진열하게 돼 있다. 게시자는 “편의점에 갔는데, 딱 봐도 학생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서 일회용 담배를 살지 말지 얘기하고 있더라”며 “저렇게 손에 닿기 쉬운 곳에 쫘르르 진열돼 있으니 애들이 슬쩍 하기도 좋고 한번 피워볼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최근 10대가 편의점에서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를 훔치다 적발되는 사건이 보도된 바 있다.

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인 이성규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학부모나 일반인의 경우 궐련 흡연의 건강 유해성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정작 최근 등장하는 담배 제품의 실상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다”면서 “그래서 자녀들한테서 전혀 담배처럼 보이지 않는 신종 담배를 발견하고는 놀라고 당황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최근 ‘세계 금연의 날’을 맞아 전국 만 20~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약 70%가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를 음료수, 화장품, 향수, 장난감 등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그 이유로 응답자의 약 60%가 ‘담배처럼 보이지 않는 디자인과 색상’을 꼽았다. 서울소비자공익네트워크 대표인 김태민 변호사는 “스마트 워치나 USB, 샤프심, 사탕 모양을 보고 처음부터 담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이 과연 액상 담배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법적으로 담배 정의에 포함해 규제되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그러면 관련 문제를 90% 이상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아울러 교육청이나 학교 차원의 흡연 예방 교육, 학부모 대상 신종 담배 정보 제공·교육을 지속해 청소년들 사이 확산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소년·부모 주도 담배 규제 강화”

미국은 식품의약국(FDA)이 학부모를 위한 액상형 전자담배 관련 다양한 교육 자료를 만들어 홈페이지에서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2019년 사회 이슈화된 ‘액상 전자담배 급성 폐질환 사망 사태’ 이후 청소년 전자담배 규제와 부모 교육을 강화했다. 캐나다도 보건부 차원에서 학부모 대상 액상 전자담배 정보 제공이 이뤄지고 있다.

담배 규제 강화 여론 형성과 담배에 대한 비규범화(denormalization)를 촉진하기 위해 청소년과 부모들이 직접 문제 제기 및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가금연지원센터 김길용 금연기획팀장은 “담배 업계가 전자 담배, 가향 담배 등 지속적인 마케팅과 각종 규제 회피를 통해 아동청소년 등의 담배 사용을 유도하고 새로운 담배 중독자로 편입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상황”이라며 “이에 따라 아동청소년 당사자와 학부모 등 보호자가 담배로 인한 중독 폐해, 담배 업계의 위선적 마케팅 등에 대한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영국 등에서도 ‘담배 없는 세대 정책’을 제안·추진하는 등 청소년 중심의 담배 규제 정책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강화되는 추세다. 미국은 액상 전자담배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된 학부모 단체(PAVE), 청소년과 젊은 층 주도 담배 규제 정책 강화 활동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Truth Initiative)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김 팀장은 “우리도 아동청소년과 보호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청소년과 학부모들을 위한 담배 제품과 담배 업계에 대한 교육 · 정보 제공, 캠페인 활동 장려 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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