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대물림 않겠다” 515억 기부… 경영권도 넘겨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 별세

“착한 기업 만들어 달라”며 은퇴
자녀들엔 “회사에 얼씬도 말라”


‘부(富)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며 무려 515억원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기부한 정문술(사진) 전 미래산업 회장이 12일 오후 9시30분쯤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6세.

13일 KAIST에 따르면 1938년 전북 임실군 강진면에서 태어난 고인은 62년 중앙정보부에 특채됐고, 80년 5월 중정 기조실 기획조정과장으로 있다가 보안사에 의해 해직됐다.

이후 사업을 준비하다 퇴직금을 사기당하는 등 불운을 겪었지만 83년 벤처 반도체장비 제조업체인 미래산업을 창업하며 큰 돈을 벌었다. 고인은 99년 국내 최초로 미래산업을 나스닥에 상장해 ‘벤처 1세대’로 불렸다. 2001년 “착한 기업을 만들어 달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고인은 자녀들을 회사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저서 ‘아름다운 경영:벤처 대부의 거꾸로 인생론’(2004)에서 “주식회사란 사장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어서 2세에게 경영권을 넘길 권리라는 게 사장에게 있을 턱이 없다”며 “역사가 가르치듯이 세습 권력은 대부분 실패한다”고 썼다. 특히 은퇴를 선언하기 직전에 두 아들을 불러서 “미래산업은 아쉽게도 내 것이 아니다. 사사로이 물려줄 수가 없구나”라고 양해를 구하자 두 아들이 “아버님께서는 저희에게 정신적인 유산을 남겨주셨습니다. 저희는 언제까지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할 겁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고인은 2001년 KAIST에 300억원을 기부한 데 이어 2013년 다시 215억을 보태 바이오·뇌공학과,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을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당시 개인의 고액 기부는 국내 최초였다. KAIST 정문술 빌딩과 부인의 이름을 붙인 양분순 빌딩도 지었다.

고인은 2014년 1월10일 기부금 약정식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과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개인적 약속 때문에 이번 기부를 결심했다”며 “이번 기부는 개인적으로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소중한 기회여서 매우 기쁘다”라고 밝힌 바 있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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