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통화 긴축 기조 유지… 섣부른 완화, 인플레 자극 우려”

“환율 불안 등으로 물가 상방 위험 커져
물가 목표 달성 확신 때까지 인내해야”
금리 인하 신중 입장 재확인해 준 발언


이창용(사진) 한국은행 총재는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현재의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수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수가 부진한 배경에 높은 수준의 금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금리 인하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총재는 12일 한은 창립 74주년 기념사에서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상을 상회하는 등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환율 변동성 확대 등으로 물가 상방 위험이 커졌고, 지정학적 리스크도 여전히 존재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금도 고물가·고금리로 인해 여러 경제 주체가 겪고 있는 고통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물가가 제대로 안정되지 않으면 실질소득의 감소, 높은 생활 물가 등으로 취약계층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섣부른 완화 기조로의 선회 이후 인플레이션이 재차 불안해져 다시 금리를 인하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 감수해야 할 정책비용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했다.

이는 캐나다 유럽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고 고금리로 내수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일부 지적에도 현 기조를 유지할 뜻을 내비친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전날 ‘경제동향 6월호’에서 “우리 경제는 높은 수출 증가세에 따라 경기가 다소 개선되고 있지만 내수는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회복세가 가시화되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또 “가계와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이 지속 상승하는 등 고금리 기조는 내수 부진의 주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정책 전환 시점이 늦을 경우 내수 회복세 약화 등의 불안을 초래할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과의 싸움 마지막 구간에 접어든 현 상황에선 섬세하고 균형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준금리를 빅스텝으로 인상하던 때의 거친 풍랑은 이제 어느 정도 잦아든 듯하다”면서도 “지금은 수면 아래 곳곳의 보이지 않는 암초를 피해 항로를 더욱 미세하게 조정해 나가야 하는 또 다른 어려움을 마주한 시기”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한은 블로그에 올라온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원칙(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을 인용했다.

또 저출생·고령화, 지역불균형과 수도권 집중, 연금 고갈과 노인 빈곤 등의 구조적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한은의 역할을 통화정책에 한정할 수 없다는 입장도 나타냈다. 이 총재는 “권한이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한은이 더 중립적으로 분석하고 장기적 시각에서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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