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재산 다 날릴까 걱정?… 유언장 대신 은행 간다

법적 효력·원하는 조건 집행 보장
유언대용신탁 잔액 1년새 43% ↑
중산층 고려 보급형 상품도 확대

게티이미지뱅크

80대 A씨는 최근 막내아들에게 물려줄 상가 한 채를 은행에 유언대용신탁으로 맡겼다. 야무진 성격의 두 딸과 달리 아들은 영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아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재산을 잘 관리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A씨는 사망 직후 상가를 한 번에 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60세가 되면 소유권을 넘겨받고, 60세 전까지는 매년 상가에서 나오는 월세를 포함한 일정액을 받도록 계약했다. 유언장과 달리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신탁을 통해 원하는 조건으로 상속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A씨처럼 유언장 대신 은행을 통해 가족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이들이 늘고 있다. 법적인 효력이 분명하면서 원하는 조건대로 상속 집행을 보장받을 수 있어서다. 현재 유언대용신탁의 주 고객층은 고액 자산가지만 은행이 보급형 상품을 확대하고 있어 중산층으로 상속신탁 문화가 빠르게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3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증가했다. 2021년 1조3400억원에 불과했던 유언대용신탁 규모는 2022년 2조500억원, 지난해 3조1100억원으로 꾸준히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고객이 금융회사에 돈을 맡겨 생전에 자유롭게 사용하다가 고객이 사망하면 지정한 사람에게 돈을 물려주는 상품이다. 법적인 유류분(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법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유산)만 지킨다면 원하는 조건대로 상속을 집행할 수 있다. 유언장은 민법상 요건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고 분실의 우려가 있어 효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유언대용신탁이 이를 해결해주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면서 상속신탁의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간 한국은 노인빈곤율이 높고 가계자산이 대부분 부동산으로 이뤄져 있어 상속신탁 시장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710만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60·70대가 되면서 상속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며 “상속신탁을 상담을 받는 이들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권도 성장 가능성이 유망하다고 보고 본격적으로 상속신탁 서비스를 확대하고 나섰다. 신한은행은 지난 4월 유언대용신탁 전산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언대용신탁·증여신탁 등을 중점적으로 운영하는 ‘신한 신탁라운지’를 열었다. 하나은행도 ‘하나 뉴시니어 라운지’를 통해 유언장 작성·보관 등을 도와주거나 ‘유산정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금 실물을 상속하거나 증여할 수 있는 유언대용신탁 상품을 출시했다.

유언대용신탁의 최소 가입금액이 한층 낮아지면서 이용층도 더 넓어질 전망이다. 현재는 최소 가입금액이 5000만~10억원으로 다소 높은 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가입 금액을 낮춘 다양한 상속신탁 상품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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