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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댓글 조작 유죄 ‘김경수 역할론’ 유감

손병호 논설위원


金 전 지사 최근 일시 귀국해
盧 추도식 참석하고 文 예방
한 달 머물며 진로 모색할 듯

尹 대통령이 金 복권시키면
비명계 구심점 역할하면서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 나와

댓글 조작은 '민주주의의 敵'
그런 중범죄로 유죄 받았는데
떠받들여지는 건 정치 희화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최근 회고록을 냈다기에 봤더니, 이번 것은 ‘외교안보편’이다. 국내 정치에 대한 내용이 없어 실망스러웠다. 난 오래전부터 그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다음에 나올 책에는 그 내용이 꼭 들어 있길 바란다.

묻고 싶은 건 ‘드루킹’ 댓글 조작사건에 대한 문 전 대통령 입장이 뭐냐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2017년 대선 때 포털 댓글 조작을 공모한 혐의로 2021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의 유죄가 확정되고도 아직까지 이렇다 할 입장이나 설명이 없었다. 설명도 없었으니 사과는 당연히 없었다. 당시 청와대도 “우린 입장이 없다”는 게 입장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재임 때 이 사건으로 수년간 나라가 시끄러웠고 야당한테 ‘댓글 조작 수혜자’ ‘문(文)정부 정통성 상실’ 등의 공격을 받았는데도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진짜 이 사건과 문 전 대통령은 무관한지를 묻고 싶은 것이다. 후보였을 때 드루킹의 존재를 전혀 몰랐는지, 후보 수행실장인 김 전 지사가 그들과 여러 차례 만나는 걸 인지하지 못했는지, 대통령 취임 뒤 김 전 지사가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드루킹 일당에게 주자고 청와대에 추천했을 때 이를 보고받지 않았는지 등 묻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안의 경중을 따지면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양평 고속도로 의혹이나 명품백 수수 사건보다 훨씬 더 엄중한데, 문 전 대통령은 한번도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최근 영국에 머물던 김 전 지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 15주기 추도식에 맞춰 일시 귀국했다. 한 달 정도 머물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 향후 진로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추도식에 참석했고, 문 전 대통령도 만났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이 김 전 지사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도 공개됐고, 넷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나눴다고 한다.

추도식에 맞춘 귀국과 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놓고 김 전 지사 ‘역할론’이 부상하고 있다. 그가 친노무현계이자 친문재인계 적자(嫡子)라서 여차하면 차기 대선 후보로 나설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돼 형 집행 뒤 5년간(2028년 5월까지) 공직선거에 나설 수 없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복권시키면 2027년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곁들여진다. 정치권에선 대선 출마와 별개로 그가 친명계 대항마로, ‘비명계의 구심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김 전 지사 대망론 또는 친노·친문 구심점 역할 등의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온당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는 문재인정부 때 이뤄진 드루킹 특검 수사와 재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사전선거운동이나 허위사실 유포, 회계부정과 같은 일반적인 선거 범죄가 아니라 선거 와중에 댓글 조작 공모라는, 선거 반칙 중에서도 매우 심각한 반칙을 저지른 혐의로 단죄를 받았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한 것이다. 그런 일로 징역을 살다 나온 인사가 채 몇 년도 안 돼 대선에 출마할지도 모른다는 시나리오는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정치인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사회의 지탄을 받는 죄를 지었으면 공직에 출마해선 안 된다. 민주당은 공직 후보 선출 때 성범죄, 음주운전, 직장 갑질, 학교폭력, 증오 발언 등 5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공천에서 아예 배제한다. 그런데 선거 때 댓글 조작은 5대 범죄의 죄과를 훨씬 넘어서는 심각한 범죄다. 법원 판결로 드러난 댓글 조작 공모 행위는 ‘민주주의의 적(敵)’이라 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유죄가 나왔을 때 친문계에선 문 전 대통령이 대선 때 두 자릿수 큰 격차로 승리했기에 설사 댓글 조작이 있었어도 승패와는 상관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렇다고 죄 자체가 없어지진 않는다. 또 2년 가까이 복역했다고 국민들의 기억까지 지울 수는 없다.

민주당 주변엔 선거 승리를 위한 일이었는데 김 전 지사 혼자 뒤집어쓴 게 아닐까 하는 ‘김경수 동정론’도 있다. 설사 그렇더라도 김 전 지사 본인이야 안타깝겠지만 동정이 곧 정치적 면죄부가 될 순 없다. 불과 1년6개월 전까지 징역을 살다 나왔는데, 지금처럼 쉽게 정치권 컴백설이 나오고 그것도 차기 대선주자 운운하며 떠받들여진다면 앞으로 정치인들이 무슨 죄인들 못 짓겠는가. 그렇게 대한민국 정치를 희화화시켜선 안 된다.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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