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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고사리 이야기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제주 달리도서관에서 북토크를 마치고, 고사리 한 봉지를 선물 받았다. 이걸로 파스타를 만들어 볼까? 나물을 무쳐 볼까? 이른 아침부터 시장기가 돈다. 오늘의 메뉴는 고사리파스타. 소금을 한 꼬집 넣고 파스타 면을 삶는 동안, 통마늘을 으깬다. 팬에 올리브오일을 휘휘 두르고 마늘을 볶는다. 마늘이 노릇노릇해지면 미리 볶아둔 고사리를 넣는다. 매콤한 맛을 내기 위해 레드페퍼를 부순다. 면수도 버리지 않고 남겼다가 마늘과 고사리, 파스타 면을 한꺼번에 볶을 때마다 조금씩 붓는다. 국물이 자작하다 싶을 즈음, 액젓을 한 스푼 넣으면 고사리파스타 완성! 고소함을 더하기 위해 들깻가루도 고명으로 뿌려 본다.

엄마와 고사리를 따러 산에 갔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뱀이 나올 때니 집에 있으라고 했는데 내가 재차 졸랐다. 엄마는 챙이 넓은 꽃무늬 모자를 쓰고 토시를 꼈다. 우리는 서늘하고 그늘진 숲으로 갔다. 촉촉한 이끼가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고슬고슬한 흙이 발밑에서 크래커처럼 부서졌다. 양지에서 자란 고사리는 음지에서 자란 고사리보다 억세고 줄기가 가늘었다. 나는 고사리 따는 재미에 푹 빠져 들었다. 뚝, 뚝, 고사리 뜯는 소리, 이따금 새소리만 울리는 고요한 숲이었다. 엄마는 이따금 허리를 펴고 내 이름을 부르며,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하셨다.

고사리를 제대로 삶았는지 확인할 때면, 엄마는 손가락으로 삶은 고사리를 으깨보곤 했다. 누구였을까. 엄마에게 처음으로 고사리 삶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고사리를 체에 밭쳐 물기를 빼던 엄마의 모습이 그립다. 이제 고사리는 한 움큼 남았다. 고사리 한 줄기마다 소슬한 바람 한 점, 햇살 한 줌, 흙냄새가 응축되어 있다. 고사리를 꺾는 손에서 손으로, 제주의 숲에서부터 내가 사는 곳까지 연결된 마음을 본다. 억세고 질긴 시간을 부드럽게 다독여주던 고마운 얼굴들을 떠올린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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