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전체기사

[한마당] 저질 대남전단

고세욱 논설위원


북한이 남한을 향해 뿌리는 전단지인 ‘대남전단’은 중년 이상에겐 ‘삐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삐라는 전단지의 영어 ‘빌(bill)’을 일본어 발음식으로 표기한 단어다. 어릴 적 삐라를 주워 경찰서나 파출소에 갖다 주면 연필 등 학용품을 받기도 했다. 이에 맛들여 삐라 줍기 위해 산을 헤매던 아이들도 있었다.

대남전단은 6·25 전쟁 때 심리전 일환으로 본격 등장했다. 유엔군이 10억여장의 대북전단을 뿌리자, 북한·중공군도 비슷한 수의 대남전단으로 맞대응했다. 1960~80년대에는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국군의 탈영을 유도하기 위한 ‘미인계’ 전단도 적잖았다. 남북 격차가 확연해진 90년대부터 실효성이 떨어져 뜸해지던 대남전단은 2004년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상호비방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종적을 감췄다.

그러다가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정부가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대남전단을 70만장 이상 뿌렸다. 하지만 역효과만 불렀다. 대남전단을 처음 보다시피 한 한국 젊은 층은 “수준 낮은 종이 질 봐라” “돈도 없으면서 왜 종이 낭비하냐”며 비웃었다. 2016년 5월 서울에서 발견된 삐라 뭉치에 CD가 동봉돼 있자 이런 댓글이 이어졌다. “북한아, 요새 남한에선 CD 같은 거 안 써 볼 수도 없다.” 2020년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북한이 “당해봐야 기분 더러운지 알 것”이라며 담배꽁초가 가득 담긴 문재인 대통령 비방 전단을 뿌렸다. 유치함에 실소를 자아냈다.

북한이 28일 밤부터 남쪽을 향해 200여개의 대남전단용 풍선을 살포했다. 풍선에는 쓰레기와 오물이 가득 들어있었다. 선전용 전단으로는 선동이 통하지 않자 아예 불쾌감을 주려는 목적인 것 같다. 대북전단에는 1달러 지폐나 남한 드라마·가요 등이 담긴 USB 메모리, 초코파이가 들어있다. 북한은 이를 체제를 흔드는 선전포고 행위라 규정한다. 풍요로운 전단이 위험한 법이다. 시간과 돈을 들여 저질 수준만 홍보하는 북한 지도부 속을 모르겠다.

고세욱 논설위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