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전체기사

전언으로 퍼진 ‘VIP 격노설’ 실재 입증이 공수처 앞 과제

특검법 폐기된 채상병 사건은
법조계 “진상 캐기, 끝 봐야 할 상황”

오동운 신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 22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채상병 특검법이 28일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채상병 사건’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야권은 국방부가 경찰에 이첩된 ‘채상병 사건’ 기록을 회수한 이유로 VIP(대통령) 격노설을 지목한다. 공수처는 특검법 부결로 시간은 벌었지만 대통령 격노가 실재했는지,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등 까다로운 ‘법적 허들’을 넘어야 한다.

VIP 격노설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 31일 대통령실 회의에서 채상병 사건과 관련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느냐’며 격노했다는 의혹이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같은 날 ‘경찰 이첩 보류’ 지시를 했다. 해병대 수사단이 8월 2일 지시에 불복해 경찰에 이첩한 기록은 반나절 만에 국방부로 회수됐다. 그사이 대통령실·국방부·국가안보실과 김 사령관 등 군 관계자들 간 다수의 통화가 이뤄진 기록을 공수처가 확보해 수사 중이다.

윤 대통령 격노를 직접 들은 것으로 지목된 이 전 장관은 “들은 적 없다”고 부인한다. 반면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김 사령관으로부터 격노설을 전해 들었다는 입장이다. 공수처는 김 사령관에게서 격노설을 들었다는 또 다른 해병대 간부 진술도 확보했다.

공수처의 1차 과제는 격노설을 직접 들은 당사자의 진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박 전 단장 주장은 현재로선 ‘전언의 전언’이다. 이 같은 진술은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한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김 사령관이나 이 전 장관이 인정하지 않는 한 VIP 격노설은 법정에서 증거능력이 없는 진술”이라며 “결국 두 사람의 입을 열어야 하는데 공수처가 이를 돌파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는 최근 김 사령관을 두 차례 소환해 강도 높게 조사했고, 3차 조사도 검토 중이다.

직권남용 혐의 적용도 만만찮은 과제다.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무 권한을 남용해 타인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을 때 성립한다. 법조계에서는 이 전 장관에게는 수사단 업무에 대한 지휘 권한이, 윤 대통령에게는 이 전 장관에 대한 포괄적 직권이 인정된다는 해석이 많다.

다만 단순히 격노한 수준을 넘어 구체적 지시를 통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점이 확인돼야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도권의 한 고법 부장판사는 “대통령이 단순히 사건에 대한 법률적 의견을 물으며 짜증을 낸 것인지, 직접적으로 수사를 하지 말라고 한 것인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문제된 발언 정도로는 대통령의 직권남용죄 성립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공수처가 신속하게 철저한 진상규명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박 전 단장이 이미 항명죄로 기소된 상황이라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며 “어떤 이유로 갑자기 국방부에서 사건을 회수한 건지 정확한 진상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