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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부쉈다 소송당할라” 출동하고 망설이는 경찰

손실보상제도, 현장에선 유명무실


지난해 9월 서울 강남의 한 지구대에 “누군가 집에 침입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신고자의 위치를 추적해 강남구의 2층 주택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긴급상황이라 현관문 도어록을 부숴야 했지만 출동한 경찰관들은 망설였다. 자칫 민원인의 사유 재산에 피해를 줄 경우 사비로 물어줘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택 2층의 창문이 열려 있는 걸 발견한 경찰관이 창문을 통해 아슬아슬하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엔 아무도 없었지만, 곧 경찰은 집 밖에서 신고자와 마주쳤다. 술에 취해 허위 신고를 한 것이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정작 출동한 경찰관들은 이럴 때마다 고민에 빠진다고 했다. 당시 현장에 나갔던 경찰관은 27일 “손실을 보상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고 맨손으로 2층 벽을 타는 위험을 무릅썼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현장 경찰의 가장 큰 고민은 공동현관 출입 문제다. 이달 초 강남의 한 파출소 경찰들은 오피스텔에서 여성이 번개탄을 피우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하지만 공동현관에 막혀 건물 안으로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소방차 사이렌 소리를 듣고 1층으로 내려온 주민 덕분에 문이 열렸다. 경찰 관계자는 “강남 쪽 아파트는 단지 입구조차 들어갈 수 없어 출동이 더 늦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렇듯 자살 시도나 구조 요청 등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경찰이 현관문 등에 발목이 잡히며 출동이 지체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실보상과 소송 우려 탓에 선뜻 강제 개문에 나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10년 전 경찰은 손실보상제도를 도입했지만 실제 치안 현장에선 여전히 유명무실이란 지적이 나온다. 2014년 도입된 손실보상제도는 갈수록 보상 건수와 보상액이 늘어나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직무집행법상 손실보상 보상액은 2019년 1억8000만원에서 지난해 2억9000만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심의 건수 627건 중 인용된 경우도 558건(88.9%)에 달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여전히 ‘적법한’이라는 표현의 해석 문제로 빠른 조치에 주저하고 있다. 경찰관들이 신고자나 제3자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예도 있어서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들이 소송으로 피해를 당한 동료들을 보면서 상당히 위축돼 있는 분위기”라며 “한정된 예산 탓에 윗선에서도 마냥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오라고 권장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손실보상을 우려한 경찰관의 소극적 대응이 위급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하다가 더 큰 문제로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은 현장 경찰들의 심리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벼운 사안의 경우 서면 심사로 보상제도 적용 심사 기간을 단축한다는 방침이다.

정신영 최원준 기자 spiri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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