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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달콤한 맛·향에 중독… ‘지속 흡연자’ 만든다

[담배 없는 세상] 젊은 세대 유혹 ‘가향 담배’

세계보건기구(WHO)와 글로벌담배산업감시기구 ‘STOP’ 회원들이 오는 31일 세계 금연의 날을 앞두고 ‘담배의 유혹으로부터 미래 세대를 보호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WHO 홈페이지

멘톨·과일향 등 흡연 거부감 없애
또래간 공유하며 호기심·욕구 자극
폐·기도 자극 줄여 깊이 흡입 유도
상대적으로 “덜 해롭다” 인식 우려

오는 31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금연의 날’이다. 올해 주제는 ‘담배 산업으로부터 아이들 보호(Protecting children from tobacco industry interference)’다. 아동·청소년에게 무방비로 노출되는 담배·니코틴 산업의 약탈적 마케팅과 규제 정책 방해 전략에 대응해 각국 정부에 보호 조치를 촉구하는 메시지다.

담배 회사들은 오래전부터 미래 세대를 신규 흡연자로 끌어들이는 전략에 몰두해 왔다. 근래엔 예쁘고 세련된 디자인의 액상·궐련형 전자담배, 다양한 맛과 향을 넣은 가향 제품 등 신종 담배로 아동·청소년, 젊은 성인 연령층, 여성을 공략하고 있다.

특히 최근 10년간 가향 담배의 판촉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젊은 세대의 흡연 입문(gateway)을 쉽게 하고 니코틴의 중독성을 높여 ‘지속 흡연자’로 만들려는 속셈이다. 이 때문에 해외 많은 국가가 가향 담배 규제를 강화하고 있으나 한국 상황과는 먼 얘기다. 가향 담배 규제를 피하기 위한 진화된 ‘꼼수·편법’도 계속 등장하고 있다.

13~18세 흡연자 85% “가향 담배 피워”

27일 보건복지부의 ‘2023년 담배 제품 시장 분석 및 사용 행태 조사’ 연구에 따르면 2022년 가향 담배 판매량은 16억3000갑으로 2013년(4억2000갑)에 비해 3.9배 늘었다. 전체 담배 판매량에서 가향 담배 비율은 2013년 9.8%에서 2022년 44%로 크게 증가했다. 입에 무는 필터에 가향 물질이 담긴 작은 캡슐을 삽입한 이른바 ‘캡슐 담배’는 같은 기간 2억1000갑에서 13억6000갑으로 6.5배 증가했다(전체에서 차지 비율 4.8%→36.8%). 반면 궐련은 같은 기간 38억9000갑에서 20억7000갑으로 줄었다(90.2%→56%).

전 세계적으로 멘톨과 과일향, 향신료, 허브, 알코올, 단맛, 꽃향기 등 다양한 가향 담배 제품이 팔리고 있다. 멘톨은 특유의 화한 맛, 부드러운 목 넘김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향이다. 멘톨 담배는 세계 담배 시장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2017년 국내 시판 궐련 60종 대상으로 연초 내 첨가물을 분석(공주대 신호상 교수)한 결과 모든 제품에서 멘톨과 이소멘톤(박하향) 테오브로민(코코아맛) 바닐린(바닐라향) 등 가향 성분이 최소 2개에서 최대 28개까지 검출됐다. 또 시판 캡슐 담배 29종에 포함된 캡슐 성분 조사에선 128종의 가향 물질이 나왔다.


10대 등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가향 담배 흡연자는 과거에 비해 10% 이상 증가하고 유해성에 대한 인식은 낮아지는 추세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김희진 교수팀이 2022년 질병관리청 등과 수행한 ‘가향 담배 사용 현황’ 연구를 보면 전국 13~39세 대상 온라인 조사에서 현재 흡연자 5243명의 77.2%(4045명)가 가향 제품을 피우고 있었다. 2016년 조사 때(64.8%) 보다 12.4% 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가향 담배 사용률은 여성(78.4%)이 남성(75.9%)보다 높았다. 연령별로는 13~18세가 85%로 가장 높았고 19~24세(80.1%) 25~39세(74.5%) 순이었다. 연구팀은 “심층 면접에서 남자는 처음 가향 담배로 흡연을 시작하고 여자는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로 거부감 없이 흡연 입문 후 액상 전자담배를 지속 사용하거나 궐련으로 갈아타며 주로 가향 제품을 피우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실제 ‘가향 담배가 흡연을 처음 시도하는 데 영향을 줬다’는 응답(67.6%)은 ‘그렇지 않다(32.4%)’보다 배 이상 많았다. 가향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응답은 비흡연자 89.1%, 비가향담배 흡연자 77.6%, 가향담배 흡연자 92%로 2016년 조사(각각 95.5%, 93.1%, 79.7%)에 비해 비사용자의 가향 담배 유해성 인지도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처음 한두 모금 피운 담배가 가향 제품인 경우 비가향 담배로 시작한 경우보다 현재 흡연자에 속할 확률이 1.4배, 가향 담배 흡연 지속 위험은 10.9배 높았다”고 설명했다. 가향 담배 사용이 금연을 어렵게 함을 보여준다. 멘톨향 담배를 사용하는 경우 무향 담배 사용에 비해 흡연량이 많고 계속 흡연할 의향을 높였으며 평생 흡연자가 될 확률은 80% 더 높았다는 보고도 있다(2022년 Global Tobacco Industry Watchdog).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 관계자는 “멘톨을 포함한 과일·허브 향은 폐와 기도의 자극을 줄여줌으로써 담배를 ‘더 깊고 오래’ 흡입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건강에 덜 해롭다고 인식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향 물질, 니코틴 중독·암 발병 위험

담배의 가향 물질은 니코틴 중독을 일으키고 일부 성분은 암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멘톨은 니코틴 대사를 변화시켜 몸속에 더 오래 머물게 하고 중추 신경계에 대한 중독 효과를 지속시킨다. 코코아에 포함된 테오브로민과 카페인은 기관지를 확장시켜 담배 연기를 더 깊이 들이마시도록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니코틴 중독성을 증대시킨다. 설탕같이 그 자체로 독성 없는 물질도 궐련형 전자담배에서처럼 가열되면 알데하이드류의 발암 물질이 생성된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가향 담배는 담배 고유의 향 대신 과자 음료수 초콜릿 과일 등에서 느낄만한 맛과 향을 갖추고 있기에 10대의 호기심과 욕구를 자극하기 쉽다. 또래들끼리 사용 경험을 공유하면서 청소년 흡연을 부추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가향 담배가 청소년이 흡연 행위에 접근하는 문턱을 낮춘다는 것. 한 번 시작된 흡연으로 니코틴을 접한 청소년은 종국에는 맛과 향이 아닌, 니코틴 중독으로 흡연을 지속하며 건강에 위해를 받게 된다.

이런 이유로 WHO 국제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은 비준 당사국들(한국 포함 183개국)에게 담배에 가향 성분 사용을 금지·제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브라질, 영국, 캐나다, 유럽연합, 미국(FCTC 비준국은 아님) 등 많은 국가가 멘톨을 포함한 가향을 금지하거나 가향 담배 제조·판매 중단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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