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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선 규제 강화 나서는데… 국내는 10년 가까이 ‘헛구호’

[담배 없는 세상]
21대 국회서도 진척 없이 폐지 수순
편법·꼼수에 대한 포괄적 규제 필요

복숭아, 파인애플 등 과일향을 첨가한 액상 전자담배의 니코틴액.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제공

가향 담배 규제 강화에 나서는 해외와 달리, 한국 정부와 국회는 10년 가까이 구호에만 그치고 있다. 가향 담배로부터 아동·청소년 보호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들게 한다.

한국은 2016년 5월 비가격 금연정책 추진 방안(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 공동), 2019년 5월 흡연 조장 환경 근절을 위한 금연종합대책(복지부), 2021년 1월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HP2030·복지부) 등 3차례 정책 발표에서 가향 담배 규제를 언급했지만, 실질적으로 추진된 바가 없다. 2019년 종합대책 발표 땐 담배사업법 개정을 통해 2021년부터 ‘가향 물질 첨가의 단계적 금지’를 천명했지만 실천되지 않았다. 가향 담배 규제의 필요성에 비해 정부의 추진 의지나 국회 논의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1대 국회에도 3개의 가향 담배 규제 법안(국민건강증진법·담배사업법 개정)이 발의됐으나 별다른 진척 없이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건강증진개발원 관계자는 27일 “가향 담배 규제가 다른 금연정책에 비해 덜 ‘푸시’된 측면이 있다. 담배사업법이 기재부 관할이라 복지부가 할 수 있는 일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가향 규제는 담배 제조사가 가장 부담을 느끼는 부분이다. 담배 회사의 로비도 상당히 작용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김희진 교수는 “유럽 등 서구에선 아이들이 가향 담배에 빠져 어린 나이에 흡연을 시작하게 된다는 사실을 굉장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데, 한국 사회는 그렇지 않다”며 “가향 담배가 청소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보다 많이 이뤄져 하루빨리 이런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내년 11월 담배 유해성 관리법 시행에 맞춰 가향 담배 규제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당 법이 시행되면 담배 회사의 담배 성분 제출과 공개가 의무화되는데, 첨가물 정보도 확보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물론 그 이전이라도 22대 국회에서 기존 법 개정을 통한 규제 논의가 이뤄지면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가향 담배 규제 법안 마련 시 각별히 신경 써야 할 점이 있다. 이성규 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가향 담배의 제조·판매를 금지한 네덜란드에서 최근 가향 캡슐만 별도로 구매해서 사용자가 직접 담배 필터에 끼워서 피우는 교묘한 방식이 등장했다. 또 미국에선 멘톨향 금지 움직임이 일자 마치 합성 니코틴처럼, 멘톨 기능을 하는 화학 물질을 만들어 파는 업체가 생겨났다”면서 “담배 규제가 있으면 그걸 피해 가는 기술도 진화하며 어떠한 편법·꼼수가 출현할지 알 수 없다”고 전망했다. 그는 “새 국회에서 가향 담배 규제 법령 논의 시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꼭 필요하다. 담배의 정의에 ‘확대적 개념’을 적용해 담배와 니코틴 제품에 포괄적 규제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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