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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시설서 장례식장으로… 존엄과는 먼 ‘죽음의 산업화’

[박중철의 ‘좋은 죽음을 위하여’]
⑩ 저주가 되어버린 노화


영화는 인생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기에 장례식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해외와 우리나라는 차이가 있다. 미국의 장례식은 집 또는 마을 교회당에서 치러진다. 일본 역시 집 혹은 마을의 절에서 장례를 치른다. 미국과 일본은 공통적으로 조문객들이 정중한 차림으로 정해진 시간에 모여 종교인의 집전에 따라 엄숙한 장례 의식을 행한다.

전통사회의 우리 장례 역시 집에서 치르는 것이 의례였다. 마을 주민들은 생업을 멈추고 상갓집 마당에 모여 삼일장을 치르는 동안 음식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했다. 해외에서 종교인이 행하는 장례의 집전은 유교 사회의 어른, 즉 노인의 몫이었다. 전통사회에서 노인은 추앙받는 지위를 잃지 않았다.

현대 한국의 장례 풍경은 차이가 크다. 한국 영화에서 장례는 전문 장례식장에서 치러지고 예외 없이 취객들이 등장한다. 장례의 진행은 종교인도, 어르신도 아닌 장례지도사의 몫이다. 조의금을 두고 벌어지는 유족들 간 갈등도 영화 속 단골 메뉴다. 고인에 대한 애도는 뒷전이 됐고 3일간의 장례 동안 유족은 지쳐간다. 한국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전통이 해체되고 전 국토의 90%가 도시로 바뀌었다. 도시민들은 생존 경쟁을 위한 것 외엔 모든 것을 정리했다. 아파트 사는 도시민들은 집에서 장례를 치를 수 없다. 종교시설은 넘쳐 나지만 장례를 위해 예배당을 내어주는 곳은 많지 않다.

종교가 죽음과 멀어지고 생존과 성공을 축복이라 부르는 순간, 죽음은 저주가 되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생존지향 공간인 병원으로 넘어와 저항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죽음은 삶의 마무리가 아닌, 병원에서 마지막까지 버티다 당하는 생존의 실패가 된다. 그리고 실패자가 무대 뒤로 퇴장하듯 죽음은 쓸쓸히 병원의 가장 외진 곳의 장례식장으로 신속하게 격리된다.

삶에서 죽음을 감추고 지워버린 순간 노화는 두려움이 됐고, 의학은 삶의 질보다 길이에 충성하고 노화를 감추는 기술은 큰 돈벌이가 됐다. 그럼에도 노화는 피할 수 없다. 노인이 되면 결국 요양시설로 격리된 뒤 병원을 거쳐 죽음 이후 장례식장으로 보내지는 일련의 과정을 ‘죽음의 산업화’라 말한다. 산업화된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존엄한 노년과 삶의 마무리를 원한다면 도시 탈출부터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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