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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한국 찾은 ‘유애나 할아버지’

한승주 논설위원


덕후.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말한다. 여기 한 덕후가 있다. 한국 드라마에 빠진, 아이유의 열성팬 미국인 제브 라테트(76)씨다. 그가 운영하는 K드라마 유튜브(Zev Does KDrama)는 “안녕하세요, 유애나 할아버지예요”라는 한국어 인사말로 시작한다. ‘유애나’는 아이유 팬클럽 이름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그는 2017년부터 한국 문화에 푹 빠졌다. 지금까지 본 한국 드라마는 250편이 넘는다. ‘호텔 델루나’를 보고 주연 배우인 아이유에 반해 그가 나온 다른 드라마를 찾아보게 됐다. 50부작 ‘최고다 이순신’을 보고, 아이유가 가수인 걸 알게 돼 음악도 듣기 시작했다. 아이유는 현재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말한다.

2018년은 라테트씨에게 최악의 해였다. 그해 초 아버지가 돌아가신 데 이어 11월 암 투병하던 딸을 잃었다. 직장에서 은퇴도 했다.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한국 드라마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를 보며 사람은 선하게 태어나고, 세상에는 혐오보다 사랑이 많다고 믿는 자신의 가치관을 한 번 더 확신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이야기가 팬들에게 알려지면서 자신의 우상인 아이유로부터 오는 7월 미국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초대하겠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성공한 덕후가 된 것이다. 급기야 한국 정부가 세계 각국 한국 콘텐츠 ‘찐팬’을 위해 마련한 ‘코리아 인바이트 유’(5월 20~24일)에도 초청돼 한국을 찾았다. 무려 3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24개국에서 49명이 뽑혔는데 그중 한 명이다. 이들은 서울 부산 전주 등을 돌며 K팝 춤을 배우고 치맥을 먹고 ‘인생네컷’을 찍고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달고나를 만들었다.

이토록 많은 이들이 한국 문화를 접하며 행복을 느낀다는 것, 창작자들에게 고맙고 존경한다고 말하는 건 동시대 한국인으로서 뭉클한 일이다. 무언가에 빠지는 일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어쩌면 나의 삶을 제대로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승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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