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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도 구단도 변화할 시점… 난 다음 시즌까지만”

[스포츠인]
리그 5위, 사상 첫 챔피언
현역 최고령… KCC 감독 전창진

부산 KCC 전창진 감독이 지난 20일 용인 기흥구 KCC 중앙연구소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 감독은 한국 농구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시즌 KCC를 챔피언에 등극시키며 능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지만, 자신은 다음 시즌을 끝으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확고히 했다. 용인=권현구 기자

“우승 소감? 그저 다행이었다”

KCC가 공공의 적에 등극한 건 지난해 5월이었다. 자유계약선수(FA) 최준용을 영입하면서 국가대표 라인업을 구축했고 우승후보 0순위로 꼽혔다. 개막 전부터 슈퍼팀이란 찬사가 쏟아졌다. 실제로 그래 보였다. 하계 훈련을 마친 뒤 열린 KBL 컵대회에서 연승가도를 달렸다. 항저우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차출됐다 뒤늦게 합류한 라건아·이승현이 부진한 상황에서 거둔 성적이었다.

악재는 울산 현대모비스와의 결승전에서 터졌다. 최준용이 내전근을 다치며 정규리그 초반을 구멍 난 전력으로 맞았다. 결과는 1라운드 2승 5패, 8위의 성적이었다. 부침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주전·벤치 자원을 가리지 않고 돌아가며 부상에 시달렸다. 슈퍼팀에 대한 기대감은 곧장 실망으로 변했다.

흐름이 바뀐 건 정규리그 막바지부터였다. 이승현·라건아 등이 살아나면서 짜임새가 생겼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난적 서울 SK와의 6강 플레이오프를 앞둔 상황이었다. 전 감독은 “연습에 임하는 선수들의 태도, 분위기가 달라 보였다”며 “‘이거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이켰다.

한 번 흐름을 타자 거칠 것이 없었다. SK를 3승 무패로 압도한 데 이어 4강에서 정규리그 우승팀 원주 DB, 챔피언결정전에서 수원 KT를 연파하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3년 만에 KCC가 챔피언에 등극하는 장면이자 리그 사상 최초로 정규리그 5위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우승이 확정된 후 전 감독이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는 모습. 연합뉴스

우승 확정 순간 사령탑의 머릿속을 채운 건 기쁨보다 안도감이었다. 전 감독은 “우리는 우승해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며 “어찌 보면 그런 책임감이 가장 큰 동기였다”고 설명했다.

‘아날로그 사령탑’의 변화

전 감독에게 ‘우승 지도자’라는 수식어는 일찌감치 찾아왔다. 2001-2002시즌 도중 원주 TG삼보 감독 대행을 맡아 잔여 일정을 수습한 뒤 곧바로 다음 시즌 팀을 챔피언에 올려놨다. 이후 3년 연속 챔프전에 진출했고 2008년까지 두 차례 더 우승컵을 따냈다.

이후 옮겨간 부산 KT에서도 성공가도는 이어졌다. 직전 시즌 꼴찌였던 팀을 단숨에 2위로 끌어 올렸고 이듬해 정규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다. TG삼보 시절 성적을 선수 덕으로 돌렸던 일각의 폄하도 이때를 기점으로 잦아들었다. 전 감독은 “스타 출신도 아니고 프런트를 거쳤다 보니 그전까진 크게 인정을 못 받았다”며 “KT에서 보낸 첫 3년간 열과 성을 다해 신나게 일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전 감독의 지도 스타일을 상징한 것은 호랑이 감독이라는 별명이었다. 연습한 만큼 코트 위에서 성과가 난다는 것이 그의 경험이자 지론이었다. 스스로 “그땐 고지식했다”며 고개를 내저을 정도였다. 전술 공부도 열심히 했다. 국제 파트의 도움으로 세계선수권대회나 미국프로농구(NBA)에서 쓰는 패턴을 입수해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승부조작 의혹에 뒤따른 야인 생활을 끝내고 돌아오자 시대가 달라져 있었다. 그는 이 간극을 지난 5일 우승 직후 기자회견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에 빗댔다. 1963년생 ‘아날로그 감독’에게 1990년대생 ‘디지털 선수’들과 합을 맞추는 것은 그 자체로 도전이었다.

전 감독이 택한 건 소통이었다. 훈련 자체보다 대화와 의견 수렴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더라”며 “이미 (기량을) 갖춘 애들은 옆에서 툭툭 쳐주기만 하면 된다는 걸 깨닫고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선수단에서 먼저 면담을 통해 전술적 변화를 건의하는 일도 생겼다.

선수들은 끈끈한 팀워크로 한몸이 됐다. 챔프전 최우수선수(MVP) 허웅이 구심점 역할을 해냈다. 전 감독은 “(최)준용이, (송)교창이, (이)승현이를 끌고 가는 힘이 보이더라”고 칭찬했다. 스타 주전 선수들이 후배들을 초대해 얘길 나누거나 밥을 대접하는 일도 잦았다. 전 감독은 “자기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 선수들의 강점”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제 더 하면 안 되죠”

전 감독은 올 시즌 도중 몇 차례 사퇴를 시사했다. 시즌 초 예상 밖 부진에 팬들의 분노가 터져 나오자 구단 측을 만나 사의를 내비쳤다. 그만두겠다는 그를 최형길 단장이 ‘준용이·교창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보라’며 만류했다.

중도 사퇴의 뜻은 접었지만 시즌을 마치면 직을 내려놓으리라 마음먹었다. ‘트럭 시위’가 결정적이었다. 전 감독은 “KCC는 내가 가장 힘들 때 손을 내밀어줬다”며 “그런 회사 앞으로 팬들이 트럭을 보내 물러나라고 한다는 게 너무 창피했다. 그때부터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말했다.

결심은 챔프전 우승일까지도 유효했다. 그는 “원래 우승 세리머니를 안 하고 (코트를) 나가려고 했는데 프런트에 붙잡혔다”며 “경기를 마치고 발표하려고 했는데 우승팀에 재를 뿌리는 격이 될 것 같아 결국 그러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사진=연합뉴스

결과적으로 전 감독은 기존 계약대로 2024-2025시즌까지 KCC와의 동행을 이어가게 됐다. 내년에도 빼어난 성적을 거둔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그는 “그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어 “이제 더 하면 안 된다”며 “확고하다”고도 재삼차 강조했다.

은퇴 후 계획을 세워둔 건 아니다. 정확히는 그럴 틈도 없었다. 하루 두 갑씩 담배를 피우는 그는 불면증 탓에 오전 3~4시에야 잠이 든다고 했다. 시즌 중엔 숙소에서 TV를 켜둔 채 농구 생각에 젖어 있는 게 일상이라고도 했다.

그저 변해야 할 시기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30대 감독은 어느덧 환갑을 넘겼고, 한때의 제자들은 동료 사령탑이 됐다. 전 감독이 플레이오프에서 상대한 김주성 원주 DB 감독과 송영진 수원 KT 감독 모두 선수로서 그의 지도를 받았다. 전 감독은 “이 나이 많은 감독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간 도태되기 십상”이라며 “제자들 상대로 싸우는 것도 참 별로인 일”이라고 미소지었다.

인터뷰 당일은 전 감독의 생일이었다. 모친, 아들, 친척 몇과 구단 근처 식당에서 모처럼 식사를 같이할 예정이라고 했다. 팔순 넘긴 노모는 전 감독이 챔프전 우승을 확정 짓던 지난 5일에도 현장을 찾았다. 전 감독은 “어머니껜 인생이 곧 나였다”며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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