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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미혹의 시대

박재찬 종교부장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 자초한 성추문 사건은 그에게 지우고 싶은 흑역사다. 1998년 8월 15일은 클린턴이 연방대배심 앞에서 성추문에 대해 증언을 하는 날이었다. 전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그는 새벽에 아내 힐러리를 깨운 뒤 그간의 부끄러운 일들을 털어놨다. 그 순간 힐러리는 복부를 강타당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고 그는 자서전 ‘마이 라이프’에서 밝혔다. 이후 서너 달 동안 클린턴은 침대 대신 침실 옆 서재의 소파에서 잠을 자야 했다.

탄핵 위기까지 몰렸지만 재선에 성공한 그는 퇴임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힐러리와 함께 대외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치욕적인 사건의 전 과정을 클린턴 부부가 어떻게 통과했는지 궁금했다. 침례교 신자인 클린턴은 연방대배심 증언 이후 3명의 목회자들에게 자신의 상담역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한 번도 꺼내본 적 없는 마음속 얘기를 나눴다. 클린턴은 또 힐러리와 함께 1년 동안 일주일에 한 차례 전문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난생처음으로 여러 감정과 경험들, 인생과 사랑, 가족 관계의 본질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클린턴은 자신이 지쳤을 때나 화가 났을 때 또는 혼자 남겨졌다고 느껴질 때 부끄러운 일을 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자신이 왜 그런 부끄러운 행동을 했는지 탐색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본인의 내면적인 삶과 외면적인 삶을 통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요컨대 ‘두 얼굴의 삶’을 극복했다는 것이다. 그의 고백을 책으로 접하면서 떠오른 건 최근 교계에서 터진 40대 선교사의 추문이었다.

본인이 설교와 각종 선교 사역을 통해 전하고 가르치던 메시지와 정반대로 그는 돈(맘몬)과 성(쾌락)의 세계에 한 발을 걸치고 있었다. 본인에게 제기된 의혹들을 일부 시인하면서 “두 마음을 품고 이중적인 삶을 살면서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때늦은 후회와 반성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배신감과 안타까움을 남기게 했다. 동시에 인간의 약함(weakness)과 악함(wickedness)은 영어 스펠링처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들었다.

수십만명의 유튜브 구독자를 둔 그였기에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태 이후 교계 중진 목회자들이 실명을 내걸고 그의 멘토를 자처했다. “넌 끝장이야. 죗값을 달게 받아야 해” 같은 날선 비난과 질책의 화살 속에서 회개와 반성, 자숙의 길로 이끄는 길잡이가 돼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 멘토링도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해당 선교사 때문에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과 낙심한 성도들에 대한 케어, 재발을 막는 개인적·공동체 차원의 노력 또한 빼놓지 말아야겠다.

지난 16일 미국 워싱턴DC 연방 의사당 2층 국립조각상 홀에 빌리 그레이엄(1918~2018) 목사의 동상이 세워졌다. 마이크 존슨 하원 의장은 제막식에서 “그레이엄 목사의 겸손함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신 이유”라고 말했다.

그레이엄 목사가 칭송받을 만한 데는 겸손과 더불어 성결의 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 그레이엄 목사는 스캔들 없는 사역을 위해 평생 분투했다. 그는 자신의 전도 사역팀인 빌리그레이엄복음전도협회(BGEA)가 사역의 순수함을 잃지 않도록 ‘모데스토 선언’으로 불리는 행동강령을 만들고 실천했다. 그의 나이 32세 때였다. ‘빌리 그레이엄 룰’로 더 유명한 4가지 강령은 정직·청렴·성결·겸손이다. 특히 성결에 있어서 핵심 실천사항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한다’는 것이었다.

온·오프라인으로 24시간 누리고 즐길거리가 넘쳐난다. 미혹의 덫이 촘촘한 유혹의 시대다. 그로 인해 추락한 인생의 소식을 거의 매일 뉴스로 목도한다. 종교인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제2의 모데스토 선언이라도 해야 할까.

박재찬 종교부장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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