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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휴일] 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신경림 시집 ‘낙타’ 중

지난 22일 세상을 떠난 신경림 시인이 2008년에 발표한 시 ‘낙타’를 그가 남긴 마지막 말처럼 읽는다. 말갛고 순하고 절제된 시어, 느리지만 분명한 리듬, 약하고 가여운 존재들에 대한 연민 등 시 한 편에서 시인의 모습과 생애가 다 보이는 듯 하다. 그는 낙타를 타고 저승길로 갔을까. 그리고 언젠가 낙타가 되어 돌아올까. “어리석은 사람 하나”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와 길동무가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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