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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광주, 동학에 물들다 나이·지역 초월한 난장

동곡미술관, 동학 130주년 특별전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전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위하여’가 광주광역시 광산구 어등대로 동곡미술관에서 지난 9일 개막했다. 두루마리 형식 역사화 ‘동학농민전쟁’(캔버스에 유채, 136×700㎝, 2024) 등 원로 민중미술 작가 김정헌의 작품이 별도 방에 진열돼 있다.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의 탄생, 몰락하는 조선 왕조의 허깨비 같은 왕들, 들불 같은 농민 봉기의 기세, 노모 때문에 대열에 참여하지 못한 말목장터 감나무 아래 농민에 관한 설화, 그리고 우금치에서의 장렬한 패배….

동학농민전쟁의 주요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는 두루마리 역사화가 전시장 한가운데 천장에서 바닥으로 이어지듯 걸려 있다. 원로 민중미술 작가 김정헌의 이 그림은 그런데 마지막 우금치 전투 장면이 완성되지 않았다. 역사에서 아직 이루지 못한 과제를 의미하려고 일부러 미완성인 채 출품된 것이다. 이 두루마리 회화 앞에 1980년대 운동권 작가로 통했던 고(故) 구본주 작가의 인체 조각 두 점이 배치돼 의미심장하다. 죽창을 든 농민군의 근육, 낫을 든 팔뚝의 힘줄은 봉기의 기세가 21세기에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의지를 뿜어내는 듯해서다.

구본주의 인체 조각 ‘갑오농민전쟁 3’(브론즈, 125×50×130㎝, 1994, 아라리오 컬렉션) 등이 놓인 전시장 전경.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이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어등대로 동곡미술관에서 지난 9일 개막했다. 개막일에 현장을 다녀왔다. 김정헌을 비롯해 김준권, 민정기, 신학철, 주재환 등 민중미술 계열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엘리트 추상미술과 대척점에서 독창적 구상미술을 해온 김홍주, 정복수 등 제3지대 원로 작가들까지 참여했다. 또 총 33명의 참여 작가 중 허진, 송필용 등 광주전남 등 지역기반 작가도 16명이나 됐다. 30,40대 신진도 아울렀다. 작가 구성에서 지역과 나이를 초월한 난장이 펼쳐졌다.

허진 작 ‘동학혁명운동이야기 6’

허진 전남대 교수는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의 수감 당시 모습과 민화 산수화 이미지를 결합해 동학혁명의 중요한 순간을 회화적으로 구성했다. 원로 민정기 작가는 경상, 전라, 충청을 넘어 강원도까지 미친 동학의 기세를 특유의 전통 지도 형태 그림에 담았다. 중견 작가 정복수는 새 세상에 대한 염원과 투쟁의 정신을 동강난 신체의 목과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몸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풍자와 해학의 달인 주재환은 분홍색 전등갓을 재활용한 작품으로 ‘사발통문’의 의미를 시각화했다. 전남 지역 작가 김우성은 동학농민전쟁과 이·팔 전쟁 등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질곡의 배후로서 ‘전쟁 유령’을 회화 속에 불러낸다.

전시 작품의 소재는 이처럼 19세기 말 동학농민전쟁에서 시작한 뒤 20세기의 광주민주화항쟁, 21세기의 촛불혁명으로 이어진다. 지역 작가인 하성흡의 ‘1980.5.21 발포’는 광주도청에서 계엄군에 맞선 시민군의 모습을 공중에서 찍은 듯 부감법으로 생생하게 재현했다. 역시 지역작가인 박성완은 촛불집회 행진 모습을 그리며 동학군의 행렬도 그러했을 거라고 상상하게 한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특별전은 국공립미술관이 아닌 지역 사학재단이 운영하는 사립미술관에서 기획했다는 점에서 점수를 줄 만하다. 미술관이 자리 잡은 어등산 자락은 구한말 외세에 맞서 싸운 의병 활동의 호남 최대 전적지라는 점에서 개최 장소가 갖는 의미도 있다. 반외세를 내건 동학농민군의 두 차례 봉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 정신은 살아남아 항일의병운동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동곡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후원하는 지역전시활성화사업에 선정됐다.

야심찬 기획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있다. 전시 주제가 지배세력에 맞선 민중의 반기가 동학 정신을 계승해 광주민주화항쟁과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는 일반적 해석에서 더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K컬처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 속에 K-사상으로서 동학의 개벽사상이 재조명되는 시점에 열린 전시라 더욱 그렇다.

동곡미술관은 부대행사로 개막 다음 날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과 수운 최제우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새 문명을 여는 외침: 다시 개벽과 하늘 모심’을 주제로 양진호 호남대 인문학교육연구소장과 김종길 다석연구자 등이 발제자로 나섰다. 세미나에서는 동학사상을 인간 중심을 넘어 만물과 더불어 새 문명을 여는 포스트휴머니즘 측면에서도 조명했다. 노은영의 작품 ‘모든 사건은 의미가 있다’가 인간 자본주의 사회가 남긴 디스토피아를 고발하긴 하지만 동학 정신을 기후 위기 문제 등으로 확장하는 흐름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세미나가 미리 기획돼 연구와 토론의 성과가 작가들의 작품 제작이나 작품 선정에 반영되는 구조였다면 ‘뜻깊다’는 평가를 넘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7월 21일까지.

광주광역시=글·사진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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