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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모든 것의 사법화’… 한국사회 경직성, 위험수위에 왔다

의대 증원을 판사가 결정하는 현실
정치 사법화 넘어 행정 사법화 심각
상식과 규범이 제자리를 찾게 해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모습. 연합뉴스

서울고법 행정7부의 지난주 판결은 의대 증원 문제를 다뤘다. 재판부가 그 합법성과 필요성을 인정해 다행히 예정대로 증원 절차를 진행하게 됐지만, 만약 반대로 판단했다면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27년 만의 의대 증원은 무산될 상황이었다. 필수·지방 의료를 살리고 고령화 시대 의료 인력을 확보하려는 정부의 밑그림도 통째로 허물어졌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의료개혁의 추진 여부를 행정7부 판사 3명이 결정한 셈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국민에게서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받은 선출직이 아니며, 입법권을 가진 국회나 재량권을 가진 행정부와 달리 판단의 시야가 오직 기존 법률에 국한돼 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걸린 국가 의료정책을 법구에 얽매이는 판사들이 떠맡아 결정해야 했던 지난주 상황, 결코 정상일 수 없는 위험한 것이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는 한층 심각해진 정치의 사법화를 목격했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인들이 정치권에서 벌어진 갈등을 스스로 조정하지 못해 사법부로 달려가곤 했다. ‘검수완박’ 입법, 장관 탄핵소추 등 여야 대립 안건을 둘러싼 권한쟁의심판이 헌법재판소에 과부하가 걸릴 만큼 잦았고, 정쟁에서 비롯된 고소·고발은 열거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많았다. 사법제도의 오남용에 가까운 정치의 사법화는 극단적 진영 갈등과 무관치 않은데, 행정의 영역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있었다. 멀게는 행정수도 이전 정책이 헌재 결정에 가로막힌 것부터 가깝게는 특성화고 폐지 정책이 법원 판결로 뒤집힌 것까지 정부의 굵직한 정책 방향을 사법부가 종종 좌지우지했다. 의대 증원 재판도 그 연장선에 놓여 있지만, 결이 달랐다. 행정수도나 특성화고는 보수-진보 갈등에 뿌리를 둔 정치적 사안이었던 반면, 의대 증원은 여야 이견이 없는 행정 이슈였다. 진영 갈등과 무관한 사안까지 사법부에 의존해야 길이 열릴 만큼 ‘행정의 사법화’가 심화하고 만연해진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가 대화와 타협이 사라진 정치 현실의 반영이듯이, 행정의 사법화는 우리 사회에서 상식과 규범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행정의 기능이 그만큼 약해졌고, 이익집단의 각자도생이 공동체를 외면할 만큼 극렬해졌다는 뜻이다. 행정의 사법화가 더 심해지면 ‘일상의 사법화’를 맞닥뜨리게 될지 모른다. 당장 상식과 규범이 어떤 곳보다 바로 서 있어야 할 학교 현장부터 숱한 소송과 고발에 ‘교육의 사법화’를 겪고 있다. 법률은 결코 만능이 아니다. 의대 증원 판결문에도 재판부가 ‘이런 사안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고심한 흔적이 구석구석 묻어 있었다. “사법부에 오지 말았어야 할 사안”이라는 법조계의 지적을 우리는 깊이 곱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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