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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태국의 벌레들

김선오 시인


태국 치앙마이 근처 작은 소도시의 레지던시에 입주했다. 이곳은 아주 덥고 습하다. 빼곡한 야자수 잎사귀가 창밖에서 흔들리고 환한 빛이 그 위로 쏟아져 옅고 짙은 그림자들을 그려낸다. 아침에는 알람 없이도 레지던시에서 기르는 닭들의 울음소리에 눈을 뜬다. 찾아보니 닭은 송과체라고 불리는, 빛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기관을 가지고 있어 해가 뜨면 본능적으로 운다고 한다. 닭 울음소리에 잠을 깨보는 것은 내 삶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도시 서울에서 살다가 이렇게 자연과 어울려 지내다보니 촌스럽게도 놀라운 것들이 많다.

이곳의 고즈넉하고 압도적인 자연의 풍경들은 자아를 적당한 크기로 축소시킨다. 며칠 사이 많은 것들에 익숙해졌다. 어제는 대문을 열자 팔뚝만한 도마뱀이 벽에 붙어 있었는데 귀엽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가장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벌레들의 존재인데, 체질적으로 체온이 높은 나는 쉽게 모기에 물리고 또 벌레들이 가진 많은 다리들을 무서워한다. 낮에는 집에 들어온 개미와 나방을 발견하여 소스라치게 놀라서 잡으려고 했다가 문득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잡아도 계속 나타날 벌레들이니 이들을 친구처럼 여기기로 한 것이다.

물론 잘 되지 않았다. 그들은 벌레, 나는 인간…. 나의 유전자는 그들을 두려워하고 징그럽게 느끼도록 진화해 왔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곳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며 내가 손님이라는 것이다. 함부로 쳐들어온 것은 나다. 그들은 대대손손 이곳에서 살아온 장소의 주인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겸허해졌다. 벌레들에게 피를 조금 뜯기고, 벽과 바닥을 조금 내어주는 일을 내가 너무 두려워해 왔던 것은 아닐까? 살면서 내가 걱정해 온 많은 것들이 사실은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내가 이 세상에 잠시 들른 손님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말이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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