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용배 (14) 교회 부흥하며 상가 교회로 이전 6년 만에 새 성전 건축

신우회 예배 인도 많이 늘어나며
산동네 빈민촌 교회도 함께 부흥
성도 늘어나 상가 건물 모두 사용

부개동 산동네 개척교회가 부흥해 갈산역 근처 상가로 교회를 이전해 예배를 드리는 모습. 이후 상가 교회도 비좁아져 새 예배당을 건축하게 됐다.

과천 정부 2청사에서 말씀을 전하고 광화문 1청사에 들러 로비에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여기는 총리실도 있는데 이곳 신우회에서도 복음을 전하게 해주세요.” 수개월 동안 이렇게 매일 로비에 앉아 기도를 드리던 어느 날 교육부에서 전화가 왔다. 목사님께서 과천 2청사 신우회에서 늘 예배를 인도하신다고 들었는데, 1청사 교육부 신우회에서도 말씀을 전해달라는 부탁의 전화였다.

예배 후 순복음교회에 다니는 한 집사님이 “목사님 저는 교육부에 17년째 근무하고 있는데 목사님처럼 매주 교육부에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실 분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어요. 오늘 목사님을 만남으로 그 응답을 받은 것 같으니 매주 들어와 주실 수 있으세요?” 하며 말했다.

그 후 월요일 점심시간마다 교육부 신우회 예배를 인도했다. 그랬더니 교육부, 총리실, 행자부 직원 중 신실한 신자들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과천 2청사와 광화문 1청사 두 곳에서 꼬박 3년간 신우회 예배를 통해 말씀을 전했다. 나는 매일 공무원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이 사역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이 맞으면, 산동네 빈민촌에 있는 우리 교회를 부흥하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는데 놀랍게도 교회는 부흥되기 시작했다.

그 무렵 교회 이름을 한마음교회에서 사랑의교회로 변경했는데 비좁은 교회당에 100여명 성도들이 모이니 다 앉지 못하고 교회 문밖까지 서서 예배드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집사님들이 예배 처소를 산동네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바쁜 목사님을 대신해 옮길 만한 장소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산동네에서 교회를 개척한 지 6년 만에 갈산 지하철역 앞 상가로 교회를 이전하게 됐다. 상가 3층을 임대했는데 강대상 양옆으로 칸막이를 쳐서 작은 사무실을 내고, 뒤쪽에는 접이식 칸막이 안에 부엌 공간을 마련했다. 예배드리는 중에 맛있는 밥 냄새가 교회 안에 가득했고 예배가 끝나면 청년들이 큰 널빤지를 이고 나와 장의자 두 개에 걸쳐서 식탁이 되니 예배당이 식당으로 변신했다.

유아실이 없어서 아이들이 예배 중에 뛰어다니기도 했다. 건물 지하까지 임대해 식당과 주일학교 공간으로 사용했는데 그마저도 부족하게 되었다. 교회 바로 아래층이 당구장이었는데 교회를 오르내리며 기도했더니 어느 날 당구장 여사장님이 “목사님이 기도했냐”며 장사가 안돼서 내놓았으니 교회 공간으로 쓰라고 했다. 그래서 상가건물 3개 층을 모두 교회로 사용했는데 그마저도 곧 비좁게 되어 예배당 건축의 비전을 성도들에게 기도제목으로 내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교회 집사님들은 성전 건축할 땅을 알아보면서 팔려고 내놓은 교회 건물을 보러 다녔는데 적당한 곳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상가교회 바로 뒤편 공장이 건물을 팔려고 내놓은 지 한참 되었는데 팔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마침 새로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건설업 사장님이 이를 보더니, 공장 건물은 증축해 수리하고 공장 마당은 주차장으로 사용하면 적당하겠다고 해서 성전건축이 시작됐다. 그렇게 상가 교회로 이전한 지 6년 만에 새 성전으로 입당하게 되었고, 다시 10년 후 지금의 청라 성전으로 이사 오게 됐다. 전도 현장으로 돌아다니느라 교회를 돌볼 시간이 부족했는데 하나님이 교회를 부흥시키신 것이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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