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쓸모를 넘어선 사랑

사무엘하 9장 1~11절


우리 사회는 쓸모 있느냐 없느냐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는 쓸모없거나 돈 안 되는 일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또 이왕이면 가성비가 좋은 것을 찾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능하고 유용한 사람은 여기저기서 찾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떨어지고 쓸모가 없어지면 내쳐지고 버림받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왕이 됐습니다. 다윗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잠재적 위협 요소들, 특히 앞선 왕과 관련된 인물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림 없이 강력한 통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다윗은 사울의 후손 가운데 아직 살아남은 사람이 있는지 묻습니다. 사울의 종 시바는 므비보셋이 남았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다윗은 그를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므비보셋은 두려웠을 것입니다. 자신의 아버지 사울은 새로운 왕 다윗의 원수였습니다. 게다가 그는 어릴 때 다쳐서 두 다리를 모두 절었는데 이것은 모든 소망이 끊어졌다는 뜻입니다. 므비보셋은 혼자 힘으로는 걸을 수 없는 장애인이었고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1절), 즉 요나단 때문에 그에게 은총을 베풀겠다고 합니다. 사울 왕이 갖고 있던 모든 땅을 그에게 물려주고 왕의 식탁에서 함께 가족처럼 식사하겠다고 합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헤세드의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진정한 사랑일까요. 누군가를 사랑하되 그의 쓸모 때문에, 그가 유용해서 사랑한다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가 가진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가 쓸모없어지고 더 이상 그에게서 얻을 것이나 나올 것이 없어도, 나이 들어 휠체어에 앉거나 병실에 누워있어도 옆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왜 이렇게 므비보셋에게 잘해줄까요. 므비보셋을 통해 얻을 무언가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아버지 요나단과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언약에 헌신하는 사랑, 그것이 바로 헤세드의 사랑입니다.

미국 목회자이자 학자인 유진 피터슨은 ‘헤세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헤세드는 환경, 호르몬, 감정 상태, 개인적 편익 등의 변화에 구애받지 않는 사랑이다. 이것은 우리가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겠노라고 결혼 서약을 할 때 바라는 사랑이다.” 결혼 서약처럼, 쓸모와 관계없이 무조건 사랑하겠다는 결단이고 헌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와 같습니다. 쓸모와 상관없는 사랑입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자신의 식탁으로 거둬준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를 왕의 식탁에 불러주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버리시고 대신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입양하셨습니다. 우리의 쓸모나 우리한테서 얻을 게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맺으신 새 언약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은 약속에 헌신하는 언약적 사랑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가진 다른 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 자체가 좋아서 사랑하시는 것이며 우리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시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헤세드 사랑을 기억합시다. 더 나아가 우리의 소중한 이웃들에게 쓸모를 넘어선 사랑, 쓸모와 관계없는 헤세드의 사랑을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치헌 시티센터교회 목사

◇신치헌 목사는 울산과 경주에서 시티센터교회를 개척해 목회하고 있습니다. 시티센터교회는 도시 중심에서 한국인과 이주민이 함께 도시와 열방을 섬기는 선교적 다문화 교회입니다. 울산예배당에서는 한국어와 영어로 예배드리고 경주예배당에서는 따갈로그어와 영어로 함께 예배드립니다. 도시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도시 안에 들어와 있는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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