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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욕망은 사회 어디에나 있다… 나는, 그것을 쓴다”

[창·작·가] 드라마 ‘지배종’ 작가 이수연

‘지배종’은 ‘인간의 먹이사슬 해방’을 위해 출발한 인공 배양 기술이 ‘완벽한 인간’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이들의 충돌을 그렸다. 극본을 쓴 이수연 작가는 인터뷰에 응하면서 얼굴이 나가는 걸 원하지 않아 작품 사진으로 대체했다. 사진은 생명공학기업 BF의 대표인 윤자유가 지하연구실에 있는 수조를 바라보며 먼저 죽은 쌍둥이 여동생을 그리워하는 모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언제부턴가 고기를 먹으면 ‘지금 내 어금니 사이에서 찢겨나가는 이것은 얼마 전까지 남의 살이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특별히 온정적인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입맛이 변하면서 나타난 현상 같아요. 물론 고기도 우유도 여전히 먹지만, 배양육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어서 상용화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드는 한편 의문이 꼬리를 물더군요. 소 키우고 닭 키우는 분들은? 콘필드에서 나는 옥수수는 거의 사료로 쓰인다던데 거기는? 자체 유통망을 갖춘 대기업에서 배양육을 생산하면 유통업엔 영향이 없을까? 우리나라 농·축산업은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 걸까 하고요.”

19일 이수연 작가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지배종’의 시작을 이렇게 설명했다. 최근 모든 회차가 공개된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배종’은 드라마 소재로는 생소한 인공 배양 기술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기술이 상용화한다면 한국 사회가 맞게 될 변화를 의문의 사망 사건들과 엮어 서스펜스 스릴러로 풀어냈다. 근미래인 2025년, 인공배양육 시대를 연 생명공학기업 BF의 대표 윤자유(한효주)와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퇴역 장교 출신의 경호원 우채운(주지훈)이 이야기의 주축이다.

‘지배종’의 공개가 끝난 소감을 묻자 이 작가는 “글로는 표현할 수 있는데 실제론 어떻게 구현될까 궁금했던 장면이 많았다. 그렇게 1화부터 지켜보다 ‘다행이다, 특수효과도 CG도 좋다’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며 “드라마로 보며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연기력과 연출력이 돋보일 때였다. 인상 좋은 김상호 배우가 순식간에 너무 무서워 보이고, 자유에게서 드물게 아픔이 배어 나올 때 그걸 표현하는 한효주 배우의 표정이 너무 좋아서 다른 드라마에서라도 저 표정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인류가 완벽해지려면 가축과 물고기, 곡식 재배 등 외부에서 식량을 충당하는 먹이사슬에서 해방돼야 한다고 믿는 자유의 목표는 ‘먹이사슬 해방’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꿈은 인공장기 배양을 통한 ‘인간의 고통 없는 영생’으로 가닿는다. 문제는 인공장기 배양이 가능해지면서 불거진다. 이 혜택을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누리도록 하려는 자유와 돈 있고 힘 있는 소수만 누리게 하려는 국무총리 선우재(이희준)가 부딪힌다. 결국 자유와 BF를 조여오는 죽음의 손길은 ‘가진 자’로 대표되는 도슨그룹 회장 선우근(엄효섭)과 선우재 부자의 영생 욕구에서 시작됐음이 드러난다.

드라마는 아조란 부대 테러 사건의 배후와 BF를 둘러싸고 연이어 벌어지는 사망사건의 배후를 추적해가는 큰 흐름 속에 전개되지만, 사실 인간 사회가 머지않아 맞닥뜨리게 될 현실에 대한 고민과 질문을 던진다. 육고기, 물고기부터 곡식까지 모두 인공으로 배양하겠다고 하자 이어지는 1차 산업 종사자들의 시위와 공격, 그 기술을 탐내고 영생을 꿈꾸는 권력자들까지. 아직 현실화하지 않은 장면들이지만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탐구를 지속하고 있는 현재를 생각하면 결코 허황한 장면들도 아니다.

왼쪽부터 윤자유(한효주)와 테러 사건의 배후를 밝혀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윤자유에게 접근한 경호원 우채운(주지훈), BF의 배양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병을 고치고 싶어하는 국무총리 선우재(이희준).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드라마 안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어떻게 구상하게 된 것인지 묻자 이 작가는 “농가에의 영향은 아마도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라며 “패리스 힐튼이 죽는 게 너무 무섭다고 말한 걸 봤는데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이생에 어마어마한 복을 누렸는데 환생해 거지로 태어날지도 모르지 않나. 선우근 같은 사람이라면 특히나 자신이 남들보다 몇 배로 더 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선우근은 자신이 평생을 일군 도슨그룹의 부와 명예를 죽음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아 가족의 희생도 마다치 않는다. 영원히 사는 인간은 완벽한 인간이 맞는지,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인지,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작가가 ‘지배종’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쓸 때는 의식하지 못하는데, 다 쓰고 나면 항상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각본을) 써왔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이번엔 거기서 벗어나 이미 목표가 정해진 후의 사람들을 쓰고 싶었다. 고민과 갈등의 시기는 끝내고 목표한 곳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것만 남은 인물 말이다. 직진만 하는 자유와 채운의 이야기를 통해 ‘전진’이란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배종’의 끝을 보면 전진만 해왔던 자유와 채운이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끝에 승리하는 듯 보인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두 사람은 배양 장기 이식을 통해 살아난다. 다만 엔딩 장면을 보고 시청자들 사이에선 ‘자유의 뇌를 채운에게 이식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는데, 이 작가는 “확실한 것만 말씀드리자면 둘 다 살았다. 이식된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궁금증 유발을 위한 결말이었는데 애매하게 끝내 (시청자들께)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장면 탓에 시즌2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으나 제작사 측은 “시즌2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이 작가는 데뷔작이었던 드라마 ‘비밀의 숲’을 시작으로 ‘라이프’ ‘그리드’에 이어 ‘지배종’까지, 인간 사회의 갈등과 어두운 단면을 짚는 사회성 짙은 작품들을 써왔다. 이런 소재들에 주목하는 이유를 묻자 이 작가는 “질문을 받고 ‘어 내가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면서도 “비뚤어진 욕망은 어디에나 있어서 포착하기가 쉽다. 그래서 저는 그냥 (사회에) 있는 걸 쓴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답했다.

2~3년에 한 번씩 꾸준히 각본을 내온 이 작가는 현재 다음 작품을 집필 중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그는 “새로 쓰는 것은 역시나 범행이 벌어지고 죄인을 밝히는 이야기”라고 간단히 언급했다. 코미디나 로맨스, 휴먼드라마 같은 다른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느냐고 하자 이 작가는 “정말 하고 싶지만 제가 도전하게 될까 싶다. 세 분야 모두 성격적으로 취약한 분야”라며 “따뜻한 드라마도 좋아해서 (제가)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따뜻함이야말로 가장 어렵다”고 털어놨다.

최근 들어 웹툰과 웹소설을 드라마화하는 작품들이 많아지고 큰 인기를 끌면서 오리지널 각본을 토대로 제작되는 작품들이 외려 주목받는 일도 있다. 각본을 쓰는 입장에서 이런 변화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 작가는 “우리나라에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고 자랑하기엔 웹툰, 웹소설의 드라마화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렇다고 오리지널 각본의 드라마가 드문 현상이 되는 건 섭섭하니 오리지널을 쓰는 사람으로서 더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기분 좋아지고 미소 지어지는 드라마가 좋다”고 하는 이 작가에게 드라마는 어떤 존재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는 오래 전의 기억을 먼저 꺼냈다. 떡볶이 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주말드라마를 보느라 떡볶이 포장을 못하던 풍경, 그 옆 다른 가게 주인 아저씨도 같은 드라마를 보느라 손님이 매대를 들여다보는 것도 모르고 있던 풍경이 뇌리에 남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름 많았던 하루를 단 한 시간이라도 잊게 해주는 것, 다른 세계로 데려다주는 것이 드라마라 생각한다. 저도 그런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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