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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음악 선구자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한국 초연

코른골트 대표작… 사후에 재평가
국립오페라단, 23~26일 예술의전당

스위스 연출가 줄리앙 샤바스가 연출을 맡은 국립오페라단 ‘죽음의 도시’에서 파울 역의 로베르토 사카와 마리/마리에타 역의 레이첼 니콜스가 연습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영화음악은 1920년대 말 할리우드에서 유성영화의 도입과 함께 시작했다.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아래 사진)는 할리우드에서 막스 슈타이너(1888~1971)와 함께 ‘영화음악의 선구자’로 꼽힌다. 할리우드 황금시대인 1930~40년대 두드러진 활동을 한 두 사람 모두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클래식 음악을 공부한 뒤 미국으로 넘어와 영화음악에 종사했다. 코른골트의 대표작으로는 영화 ‘한여름 밤의 꿈’(1935)과 ‘로빈 후드의 모험’(1939) 등이 있고, 슈타이너의 대표작으로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와 ‘카사블랑카’(1942) 등이 있다. 다만 슈타이너가 클래식 음악에 미련을 두지 않았던 것과 달리 코른골트는 영화음악을 하면서도 평생 클래식 음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다는 점이 다르다.


코른골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명 음악평론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작곡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가 작곡한 곡을 듣고 당시 거장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이 극찬한 것은 유명하다. 1926년 미국 프로듀서의 요청으로 오페레타 ‘박쥐’를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편곡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1934년부터 할리우드에서 일하게 됐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 영화음악을 했지만, 클래식 음악을 놓지는 않았다. 그런데, 1938년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면서 유대인인 그는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망명해 영화음악에 전념하게 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코른골트는 영화음악을 중단하고 다시 클래식 음악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신곡을 가지고 고향인 빈을 방문하자 “영화에 영혼을 판 작곡가”라며 냉대 받았다. 당시만 해도 영화음악에 대한 평가가 낮았던 데다 무조음악이 헤게모니를 잡은 빈 음악계에서 그의 후기 낭만주의 음악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의에 빠져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작곡을 계속했지만 60세의 이른 나이에 뇌출혈로 타계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 그의 영화음악은 물론 클래식 음악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특히 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포스터)가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구미에서 코른골트 붐이 일어나게 됐다. 현재 코른골트는 20세기의 클래식 음악 작곡가의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그의 화려한 멜로디와 수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은 존 윌리암스 등 현대 할리우드 영화음악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코른골트 작품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죽음의 도시’는 코른콜트가 조르주 로덴바흐의 소설 ‘죽음의 브뤼주’를 원작으로 23세 때 작곡한 오페라다. 죽은 아내 마리를 그리워하는 파울이 어느 날 아내와 닮은 유랑극단 무용수 마리에타를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경험 끝에 파울은 도시를 떠난다.

이 작품은 3관 편성의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음향과 함께 ‘내게 머물러 있는 행복’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 등의 아리아가 매력적이다. 1920년 초연 당시 1차 세계대전 이후 상실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한다는 평가와 함께 대성공을 거뒀다.

국립오페라단이 5월 23~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죽음의 도시’를 한국 초연한다. 독일 지휘자 로타 쾨닉스와 스위스 연출가 줄리앙 샤바스가 이끈다. 그리고 파울 역에 로베르토 사카·이정환, 마리/마리에타 역에 레이첼 니콜스·오미선 등이 출연한다.

장지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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