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시인 도종환 “국회서 쌓인 고뇌의 흔적 담았다”

[책과 길] 시집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출간

도종환 시인이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시집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이달을 끝으로 의정 활동을 마치는 도종환(68) 의원이 새 시집을 내고 문학계 복귀를 알렸다.

도종환은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시집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12년 동안의 의회 활동을 마무리하는 달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40년이 되는 해에, 그리고 ‘사월 바다’ 이후 8년 만에 새 시집을 내게 됐다”면서 “국회에서 일하는 시간에 쌓인 고뇌의 흔적들을 담았다”고 말했다.

“라일락은 왜 거기 있을까//사월이/간절하게 불러서/거기 있다//너는 왜 거기 있는가.” 시집에 수록된 ‘라일락’이라는 짧은 시에는 정치인 도종환을 서늘하게 바라보는 시인 도정환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국회에서 일하는 동안 제 스스로에게 늘 물었던 질문은 ‘너는 왜 거기 있는가’였다”고 설명했다.

‘심고’라는 시에서는 정치 활동에 대한 자평을 들려준다. “시 쓰다 말고 정치는 왜 했노?/세상을 바꾸고 싶었습니다/그래, 세상은 좀 바꾸었나?/마당만 좀 쓸다 온 것 같습니다.”

정치 때문에 변질됐다는 세간의 평가에 답하는 듯한 ‘소금’이라는 작품도 있다. “썩어가는 것들과 맞서면서/여전히 하얗게 반짝일 수는 없다/부패하는 살들 속에서/부패를 끌어안고 버티는 동안/날카로운 흰빛은 퇴색하고/비린내는 내 몸을 덮었다//그걸 보고 사람들은 저게 무슨 소금이야 한다.”

도종환은 중학교 교사 시절이던 1986년 ‘접시꽃 당신’을 발표해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2012년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간 뒤 내리 3선을 했고, 2017년부터 2년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근래 한국 문인의 정치 이력으로는 단연 돋보인다.

그는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고민한다는 점에서 정치인과 작가는 비슷한 점이 있다”며 “정치가 정책과 예산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면, 문학은 정서적이고 정신적인 영향을 주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신이 주도해서 만든 예술인 고용보험제도가 21만명의 예술가들에게 생계 지원을 하게 된 것을 예로 들면서 “문화와 예술을 위해 국회에서 일할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후배 문인들이 국회에 들어가겠다고 하면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시집에는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을 담은 작품들도 포함돼 있다. 표제시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은 “비수를 몸 곳곳에 품고 다니는 그림자들과/적개심으로 무장한 유령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관용은 조롱당하고/계율은 모두를 최고 형량으로 단죄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시대는 점점 사나워져갑니다”라고 현실을 묘사하면서 “서로를 부족한 그대로 인정하게 하소서” “내 안의 어두운 나를 차분히 응시하게 하여주소서”라고 간구한다.

도종환은 “정오는 가장 따뜻한 시간, 밝고 환한 시간, 생명을 가진 것들이 가장 왕성하게 생육하는 시간”이라며 “우리는 그 시간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시간, 가장 어두운 시간, 균형이 깨진 시간, 거칠고 살벌한 시간을 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선 선조시대 율곡 이이 등이 중심이 된 사림 정치의 실패를 다룬 ‘사림’이라는 시는 자신이 몸담은 민주당 정치의 실패에 대한 성찰로도 읽힌다. “척신을 물리치고/구체제에 안주하여 주구 노릇 하던 요신들 내몰면/도학을 펼치는 정치가 가능하리라 믿으셨지만/사(邪)와 정(正)으로 다시 서로를 구분하고/선명성의 칼날로 서로를 베고 다투니/… 어찌하여 똑똑하고 젊고 패기 있는 선비들이 집권한 뒤/나라가 그 지경이 되었는지.”

도종환은 “정치적인 역할이 앞으로 제게 주어질지 아닐지는 모르겠고, 지금은 문학으로 돌아왔으니 작가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왜 정치에 갔는지, 거기서 뭐 했는지에 대해 산문집을 쓸 생각이다”라고 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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