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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스토리텔링의 맥점

김시래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지난 7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선 미식 사업을 꿈꾸는 청년 창업자들의 발표가 있었다. 대부분의 참가자는 건강과 관련된 원료를 소재로 쿠키와 빵, 떡을 만들어 가게를 차리고 SNS를 활용해서 알리겠다는 비슷한 내용의 발표를 이어갔다. 하지만 남다른 아이디어로 이목을 끈 발표자도 있었다.

동양미술을 전공한 이력을 살려 한과에 독특한 디자인을 입혀 중장년층을 공략해보겠다는 분이나 남편이 운영 중인 빨래방에 임시 벽을 설치하고 그 한쪽에 통학과 출근에 바쁜 젊은이들을 위해 간단한 아침을 준비하겠다는 분도 있었다. 설득의 요체는 아이디어다. 그러나 설득의 포장술 역시 중요하다.

여기 스토리텔링의 두 가지 작법을 전한다. 첫째, 개념이 아니라 상황으로 전해라. 필자가 7살짜리 포메리언 달구를 키우기 전까지 강아지를 쳐다보지도 않았던 이유가 있다. 유년 시절, 쥐약 먹은 쥐를 먹고 죽은 강아지를 목도한 충격 때문이다.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슬펐다고 하면 공감이 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진심이 행동으로 입증되듯 인간의 감정은 개념이 아니라 행위와 상황으로 전달된다. 감각과 감정의 언어로 세밀하고 내밀하게 묘사해라.

이런 식이다. ‘내가 키우던 강아지가 오늘 아침에 죽었어. 약을 먹은 쥐를 먹더니 벽을 타고 오르내리며 괴로워했지. 형이 하이타이를 푼 물을 입 안에 강제로 집어넣었어. 녀석은 한동안 괴로워하더니 저녁때 아무 일 없이 다 나은 듯 내 품으로 돌아왔어. 녀석은 내 눈을 쳐다보며 내일은 함께 지내리라고 말하는 듯했어. 하지만 나를 한동안 가만히 응시하더니 갑자기 스르륵 눈을 감았어. 그 후 다시는 녀석의 눈을 뜬 모습을 보지 못했어.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면 늘 반겨주던 녀석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거지’라고 말이다.

또 하나는 압축미다. 최근 문어를 닮았다는 한 정치가의 일선 복귀가 전해졌다. 문어의 지능은 실제로 얼마나 될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면 추론이 가능하다. 문어의 생존술은 놀랍다.

평화로운 바다에서 유유자적하며 물살을 가르다가 위급한 상황에선 몸 전체를 말아 바다풀 속으로 숨는다. 상어의 공격은 다리 빨판에 조개 껍질을 고정해 거북이 등 같은 보호판을 만들어 피한다. 도망가는 바닷가재는 몸을 넓게 부풀려 보쌈하듯 덮친 후 먹어치운다. 바닷속 무척추동물 중 가장 복잡한 뇌를 가진 문어와 주인공이 나누는 신뢰와 우정의 교감 장면은 인상적이다.

주인공은 자연의 신비로움과 함께 자신의 슬럼프를 이겨나갈 계기도 얻는다. 만물의 영장이라며 지구를 제집처럼 마구 헤집어 불볕더위와 호우에 시달리고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호되게 당하는 인간에게 주는 경계는 묵직했다. 인간은 언제까지 자신의 삶터를 돌보지 않고 앞으로만 내달릴 것인가. 그런데 어느 날 지하철 3호선 녹번역사에서 이 영화의 의미를 한 마디로 나타낸 문장을 발견했다. ‘앞으로 나가려면 뒤로 한참 물러서야 해’(그네)라는 두 줄의 시였다.

세심하되 담백하게 전해라. 영화 ‘하나와 앨리스’에서 만년필에 대해서 아빠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가끔 서랍을 정리하다가 불쑥 튀어나오곤 했지. 이걸 선물로 받았지 생각하면서도 결국은 또 안 쓰게 돼. 그래도 발견할 때마다 입학 때 추억이 떠오르잖아. 선물 받은 물건은 쉽게 버리지도 못해. 그래서 의외로 오래도록 남게 되지. 그런 의미에서 도움이 돼. 부적이라 생각하거라. 그런 점에서 만년필은 잘 고안된 물건이야.’ 딸에 대한 아빠의 사랑을 이보다 더 진득하고 곡진하게 전할 수 있을까 싶다.

김시래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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