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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초대교회로 돌아간다는 건 뭘까

장창일 종교부 차장


초기 기독교는 박해받는 종교였다.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 각오가 필요했다. 그 속에서 교회가 생겼고 복음이 확산됐다. 고난 속에서 피운 꽃이었던 셈이다.

초대교회 역사가인 앨런 크라이더는 저서 ‘초기 교회와 인내의 발효’에서 기독교가 자리잡을 수 있었던 비밀이 인내의 발효에 있었다고 썼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구경꾼으로 가득한 원형극장에서 갈가리 찢기는 순교를 통해 신앙을 증언했다. 모든 공개처형이 초기 기독교엔 성공적인 홍보 기회였다는 역사가들의 평가가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도 프로그램이나 교리교육을 위한 교재가 있었던 게 아니었다. 초기 기독교는 죽음 앞에서도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복음의 강력함을 발효시켰던 이들의 묵묵한 희생 덕분에 지경을 넓힐 수 있었다.

교부들이 남긴 글에도 인내에 대한 증언이 있다. 클레멘스는 인내는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한다고 했다. 오리겐도 기독교 증언의 핵심을 인내라고 말했다. 터툴리아누스는 ‘그리스도인 됨의 핵심’을 인내로 꼽았다. 키프리아누스는 선교의 길이 열리는 걸 인내가 주는 유익으로 봤다. 락탄티우스도 인내를 모든 덕 중 가장 큰 덕이라며 반복해 언급했다.

“종교는 죽임에 의해서가 아니라 죽는 것을 통해서, 폭력이 아니라 인내에 의해서 옹호돼야 한다”고 믿었던 게 인내를 발효시켰던 이들의 신앙 고백이었다.

박해 가운데 인내의 종교가 제국의 종교로 바뀌는 결정적 순간이 찾아왔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이 모멘텀이었다. 교회를 적극 후원했던 그로 인해 모진 핍박 대신 영광이 깃들었다. 로마 제국의 종교가 됐는데 당시로서는 세계의 종교가 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를 맞이한 기독교로 인해 교부들의 메시지도 달라졌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앞선 세대 교부들의 목숨을 건 인내와 사뭇 달라진 인내를 언급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던 인내 대신 로마 전체를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인내를 꿈꿨다. 기독교 국가를 의미하는 ‘크리스텐돔’ 건설이 그의 바람이었다.

인내만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인내를 통해 얻었던 끈기 있는 발효의 결실도 잊혔다.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된 뒤 긴 시간 서구의 여러 나라가 앞장서 제국주의적 선교를 했다. 삶으로 보여주는 위대한 신앙 가치는 비로소 퇴색했고 “믿으라”는 선포만 만연하게 됐다. 변형된 인내는 지금 우리 신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내의 발효’가 보여줬던 폭발적 힘도 잃은 지 오래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지켰던 뜨거웠던 신앙에서 멀어져서일까. 강단에서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메시지가 줄을 잇는다. 초대교회로 돌아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김운성 서울 영락교회 목사는 최근 설교에서 이 부분을 짚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본 각자의 경험을 공유했던 초대교회 교인들의 삶으로 우리가 돌아갈 방법은 없다”면서 “다만 지금 교인들은 주님을 육의 눈으로는 못 봤지만 영으로는 볼 수 있는 깊은 신앙을 회복해야 하고 주님이 주신 은혜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물리적으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한 이상향에 얽매이지 말고 신앙인의 삶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라는 당부였다. 초대교회로 돌아가겠다는 욕구 속에 크리스텐돔을 향한 열망이 도사리는 건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초대교회로 향하는 건 조금 불편하더라도 복음으로 가득한 삶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버려야 할 건 신앙적 나태함이다. 힘의 종교를 향한 허망한 기대가 아니라 순수했던 초대 신앙의 자리로 회기하는 책임이 지금을 사는 신앙인에게 주어진 새로운 인내가 아닐까.

장창일 종교부 차장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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