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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AI 시대에 필요한 ‘보자기 정신’

박희준(연세대 교수·산업공학과)


질문 자체를 가로막는 문화가
한국의 ‘한계’ 만든 것 아닌가

AI 시대에 승자되려면 최적의
질문 던져야… 편견 지배하는
문화에서는 이게 어렵다

보자기가 상징하는 포용과
배려, 겸손 있어야 정형화된
틀 벗어난 질문 가능해진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선행 학습으로 삼각함수, 수열, 미적분 등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 문제를 푸는 초등학생의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도 않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삼각함수를 왜 배워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에 활용할 수 있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저 공식을 외우고 다양한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연습을 통해 문제 푸는 기술을 익힐 뿐이다. 문제 푸는 기계로 성장한 인재들로부터 ‘신은 존재하는가?’ ‘지구는 우주의 중심인가?’ ‘사과는 왜 직선으로 떨어지는가?’ 등 인류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어 낸 질문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인류의 삶을 발전시킨 새로운 사상과 기술이 출현했던 순간마다 오랜 세계관을 뒤집는 엉뚱해 보이지만 창의적인 질문이 있었다.

하지만 대학 강의실에서도 기업 회의실에서도 창의적인 질문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문제 푸는 기계를 양산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도 문제지만 질문을 가로막는 문화가 더 큰 문제일지 모른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히 여기는 문화, 속도에 집착하는 문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 무엇보다 쏠림 현상과 편견이 지배하는 문화 속에서 제대로 된 질문은 고사하고 질문 자체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 그저 정형화된 틀 속에서 주어진 문제를 빨리 풀어야 할 뿐이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패스트 팔로어’ 역할에 충실해야 했던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효율성 중심의 사고에 기인하는 문제가 아닐까.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잠시 잊고 지냈던 보자기 문화를 떠올려보자. 보자기는 물건을 싸거나 씌우기 위해 네모지게 만든 천이다. 가방이 없던 시절에 물건을 옮기는 수단이었고, 수납공간이 여의치 않던 시절에는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로도 쓰였다. 보자기는 어떠한 모양의 물건도 감싸 안을 수 있고 심지어 안에 담고 있는 물건에 따라 이름이 바뀐다. 책을 싸면 책 보자기, 책을 쌌던 보자기를 풀어서 이불을 싸면 이불 보자기다. 이렇듯 모든 걸 감싸 안을 수 있는 포용력과 감싼 물건에 따라 본인의 이름까지 바꾸는 배려심이 보자기에는 담겨 있다. 더 나아가 가방은 물건을 넣어 두지 않을 때도 공간을 차지하지만 보자기는 물건을 싸지 않을 때는 공간을 내어준다. 늘 새로운 것을 담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내는 지적 겸손이 보자기에는 담겨 있다.

보자기에 담겨 있는 포용력, 배려심, 지적 겸손은 쏠림 현상과 편견이 지배하는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지금은 가방과 수납공간이 보자기를 대신하고 있지만 아직도 보자기를 찾는 순간이 있다. 결혼을 앞두고 예단을 포장할 때, 명절에 마음을 담은 선물을 전할 때 보자기를 찾는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섬기려 할 때 보자기를 떠올린다. 몸이 기억하는 보자기 정신을 되살려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질문을 깎아내리는 문화를 극복해야 한다.

이종 간 융복합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시장에 전달해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과거 생산량을 효율적으로 늘리기 위해 공급자의 관점에서 구분됐던 시장의 영역이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관점에서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발전하면 머리에 담아둔 지식을 이용해 문제를 빨리 푸는 역량보다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지식을 AI를 활용해 빨리 찾아내는 게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리고 AI를 통해 필요한 지식을 빨리 찾아내기 위해서는 AI에게 적합한 질문을 던져야 하므로 질문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다. 적합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통찰력을 키워야 한다.

통찰력은 다양한 경로의 학습과 사색을 통해서 얻어진다. 17세기의 뉴턴이 혼자만의 사색을 통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면 AI 시대의 뉴턴은 AI와의 대화를 통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할지 모른다. AI 시대에는 자신이 아닌 두 번째 뇌의 역할을 하는 AI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통찰력을 얻기 위한 사색도 해야 할 것이다. 질문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크게 느껴지는 시대에 아인슈타인의 어록 중 하나가 떠오른다. “문제 해결에 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55분을 제대로 된 질문을 찾는 데 쓰겠다.”

박희준(연세대 교수·산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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