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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개혁이란 무엇인가?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단순히 좋게 고치는 게 아니라
역사적 방향성 제도화 해야

특권계층 기득권 축소하기에
저항 따르고 강제성 수반돼

총선이 끝난 지금은
정의부터 차분히 돌아볼 때

선거철만 되면 누구를 심판하자는 구호가 난무한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보자면 최고의 화두는 뭐니 뭐니 해도 ‘개혁’이다. 예전의 민주화운동도 실은 나라를 개혁하여 민주공화국다운 공화국을 만들자는 외침이었다. 그래서 개혁은 대개 야당의 구호였다. 21세기 요즘엔 정권이 수시로 바뀌다 보니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를 전후하여 으레 개혁을 말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개혁이라는 말에 익숙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런데 정작 개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뜻 제대로 답하는 이는 의외로 적다. 일반 보통명사로서의 개혁은 문제가 있는 어떤 제도나 현상을 개선하는 행위를 뜻한다. 좋게 고치면 다 개혁이다. 하지만 역사학 전문용어로서 개혁의 의미는 개선과는 결이 사뭇 다르다.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역사적 방향성을 제도적으로 갖추어야 개혁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대통령이 관리들의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 바람을 크게 일으켰다고 하자. 그러면 개혁일까? 그것은 당연히 할 일이며 원칙(법)의 재확립이지, 솔직히 개혁에는 미치지 못한다. 당연히 그렇게 집행해야 할 일일 뿐이다. 전두환·노태우 정부 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범죄와의 전쟁’이 그런 사례다. 역사학에서는 인치(人治)에 기초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개혁이라 하지 않는다.

역사학에서 개혁이란 왕을 포함한 특권계층의 기득권을 제도의 변화를 통해 구조적으로 축소하는 조치를 말한다. 당연히 저항이 따른다. 그래서 쉽지 않다. 어떤 형태로든 강제성(폭력)이 없이는 개혁이 어렵다. 프랑스가 혁명(1789년)을 통해 그 초석을 놓았다면, 영국은 권리청원(1628년)과 권리장전(1642년) 등 장기간에 걸쳐 순차적으로 그것을 이루었다. 부르주아 시민혁명이라는 것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일련의 개혁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상의 개혁은 이처럼 혁명에 버금갈 정도로 무게감 있는 제도적 변화를 의미한다. 현대 한국에서 개혁이라면 대표적으로 금융실명제(1993년)를 꼽을 수 있다. 투명한 금융거래를 제도적으로 강제함으로써 다양한 블랙머니를 움직이던 상위계층의 운신 폭을 축소하였다.

역사적 인물을 보자. 요즘엔 ‘정조’라고 하면 ‘개혁’을 떠올릴 정도로 개혁의 아이콘 이미지가 강렬하다. 그렇다면 정조는 정말로 개혁 군주였을까? “A는 B다”라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B의 범위와 그 기준을 분명히 정의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정조는 개혁 군주였다”라는 명제를 논하려면 무엇보다도 개혁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다음에 정조의 정책들을 하나하나 분석해 개혁 군주의 의미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따진 후 종합평가서를 작성하는 것이 기본 절차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밟고 정조를 개혁 군주로 평가한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정조의 정책 가운데 역사적 방향성을 지닌 제도적 변화라면 정조 15년인 1791년 시행한 신해통공(辛亥通共)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신해통공은 육의전을 제외한 일반 시전이 소유한 금난전권(禁亂廛權)을 폐지해 평범한 상인들의 활동을 용인한 상업정책을 말한다. 하지만 그나마도 이미 일반화한 사회경제적 현상의 사후 추인에 지나지 않았다. 양반 지배층의 기득권을 억제한 조치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신해통공 과정에서 정조가 과연 얼마나 주도적 역할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세상이 이미 청나라 천지가 된 지 100년도 더 지난 18세기 후반에 이르자 사람들 사이에서 명나라에 대한 의리 의식이 시들해졌다. 문체도 청나라식으로 바뀌고, 오히려 청나라로부터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론이 대두했다. 천주교도 들어왔다. 정조는 이런 새로운 사조를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위한 동력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는 예의와 법도가 땅에 떨어진 타락한 시대였다. 그래서 그가 추구한 유토피아는 성리학적 유교 사회로의 회귀였다. 그는 자신의 솔선수범을 통해 교화가 정말로 가능하다고 믿은 순진한 유학자였다.

지금으로 보자면 정조는 저급한 극우가 아니라 상식과 대화가 통하는 합리적 보수로 분류할 수 있겠다. 그런 정조를 개혁의 화신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이 나라에서 진정한 개혁이 가능할까? 총선이 끝난 지금 개혁이란 무엇인가를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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