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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봄의 연결

김선오 시인


우리 집은 연립주택들이 늘어선 동네의 작은 골목에 위치해 있다. 나무나 화단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집 주변에 라일락 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 있었던 모양인지, 봄이 되고 나니 내가 사는 건물 입구에서부터 진한 향기가 났다. 향기가 나는 곳을 따라 걸어 내려가다 보니 화창한 보라색의 라일락 나무가 선물처럼 나타났다.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에서 봄볕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눈부시게 예뻤다. 함께 걷던 친구와 나는 나무 앞에 다가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봄이 아니라면 맡을 수 없는 향이 가득 풍겨왔다.

라일락 앞에서 서성이던 우리를 보셨는지 지나가던 동네 주민 한 분이 “라일락!”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쪽을 쳐다보니 우리를 바라보며 히히 웃고 계셨다. 우리도 그분을 바라보며 함께 히히 웃었다. 초면인 분이었지만 봄을 함께 즐기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분은 왜 우리를 바라보며 “라일락!” 하고 외치셨던 걸까? 우리가 나무의 이름을 모른다고 생각하셨던 걸까? 우리는 이 나무가 라일락 나무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어쩌면 라일락 나무 앞에서 신이 난 얼굴로 냄새를 맡고 있던 우리가 어르신 눈에 귀여워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를 바라보며 “라일락!” 하고 외치는 그분의 모습이 정말로 귀엽게 느껴졌다.

그분은 가던 길을 마저 가고, 우리도 가던 길을 마저 갔다. 그러나 눈을 맞추며 웃는 동안 우리는 봄으로 이어져 있었을 것이다. 서로를 귀여워하는 마음으로 이어져 있었을 것이다. 함께 히히 하고 웃었던 순간이 너무나 따뜻하고 정겨워서, 이러한 정겨움이 참으로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타인과 작은 기쁨을 함께 누리는 것. 그리고 잠깐의 웃음과 눈맞춤을 통해 그 기쁨을 나누는 것. 삶은 이렇게 사소한 연결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작은 연결의 순간이 한 계절을 살아갈 힘을 준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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