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노 매직이요? 노력의 산물이죠

[스포츠인] 프로배구 OK금융그룹 오기노 마사지 감독

오기노 마사지 OK금융그룹 감독이 지난 11일 경기도 용인 OK금융그룹 배구단 클럽하우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기노 감독은 지난해 5월 부임해 팀의 창단 첫 KOVO컵 우승, 8년 만의 챔피언결정전 진출과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용인=권현구 기자

프로배구 OK금융그룹 오기노 마사지(54) 감독의 배구 인생에 ‘성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선수로서도, 지도자로서도 남들이 가지 않는 변두리를 걸어오며 매 순간 시험대에 오르고 증명하기를 반복했다.

‘노력하면 꽃이 핀다’는 그의 좌우명대로, 정도(正道)를 빗겨 가면서도 꾸준히 성적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은 오로지 피나는 노력이다. 창단 첫 KOVO컵 우승, 8년 만의 챔피언결정전 진출, 그리고 리그 준우승까지. 부임 첫해 만에 이룬 굵직한 성과들의 이면에도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오기노 매직’이란 찬사는 고마운 말이지만 달갑지만은 않다. 최근 경기도 용인 OK금융그룹 배구단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오기노 감독은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을 뿐, “마법을 부린 게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회사원이니까”

오기노 감독은 선수 시절 자신의 위치를 줄곧 ‘회사원’이라 표현했다. 일본 리그는 한국과 달리 배구 선수가 실업팀 소속 회사원으로 입사한다. 배구에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동료들이 모기업의 회사원이 되어 물건을 팔거나 사무 업무를 맡는 걸 지켜보며, 그는 하루하루 간절하게 배구에 임했다.

수비에 능한 공격수로 애초 주류와는 거리가 멀기도 했다. 주전에서 밀리면 영업을 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려 밤낮으로 해외 선수들의 비디오를 보며 공부했다. 리시브상 7회, 리그 우승 7회에 빛나는 ‘산토리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타이틀은 그렇게 완성됐다.

지도자로서의 출발은 너무 빨라서 문제였다. 은퇴 후 2개월 만에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소속팀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순위가 중위권으로 처져있어 우승에 대한 압박은 덜했지만, 그렇다고 현상 유지가 답은 아니었다.

“2010년 3월에 은퇴했는데 5월에 갑자기 (구단에서) 감독을 맡아달라고 하더라고요. 22년 현역 생활 동안 만나온 지도자들에게 배운 걸 떠올리면서 훈련 루틴을 짜고, 선수들이 주체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노력은 결과를 배신하지 않았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산토리 감독을 지낸 4시즌 동안 그가 성과를 내지 않은 적은 없다. 전국 실업팀과 아마추어팀이 참가하는 전국 배구 선수권 대회 우승은 물론이고, 매 시즌 리그 순위를 3계단 이상 끌어올리며 강등권에 있던 팀을 구해내기도 했다.

지난해 OK금융그룹의 첫 외국인 사령탑이 되고 나서도 외부의 기대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봤다. 선수들의 시선도 같은 선상에 있길 바랐다. 오기노 감독은 “지금 할 수 있을 때 성장해둬야 하루라도 더 오래 프로 선수로 남는다”며 말도 통하지 않는 선수들에게 늘 성장을 강조해왔다. V리그 데뷔 첫 시즌 만에 OK금융그룹의 변화를 결과로 증명해낸 배경이다.

배구 인생 36년, ‘기본기’는 그대로


성적을 내는 데 매번 빠듯한 시간이 주어졌지만, 급할수록 기본으로 돌아갔다. 수비에 방점을 둔 배구 철학이 오기노 감독이 생각하는 기본이다. 그는 “배구라는 종목은 일단 공을 떨어뜨리면 안 된다”며 “디그 연습을 강화하는 기본은 선수 시절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지도자로서의 기본기는 44살에 간 브라질 지도자 연수에서 틀을 닦았다. 오기노 감독은 “일본과 다르게 브라질에선 시니어 팀의 남녀부 훈련 방식이 다르지 않았다”며 “이번에 OK금융그룹에 도입한 선수의 개인 스킬을 올리는 대부분의 연습도 브라질에서 배워온 것”이라고 밝혔다.

포지션별로 한 명씩 블로킹, 디그, 토스, 리시브, 수비 등 같은 메뉴의 훈련을 동일한 시간을 들여 본 뒤에 그 선수의 약점을 파악하고, 힌트를 주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건방지게 들릴 수 있겠지만, 보면 알아요. 이 선수가 어떤 게 부족하고, 공격 성공률이나 속공이 안 되는 이유가 보이거든요. 그래서 지도자는 그 부분을 계속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에이스 레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기노 감독은 “공격수는 보통 볼을 때릴 수 있는 위치를 3개 이상은 가져야 하는데, 레오는 블로커 위에서 때리는 건 잘하지만 직선과 대각 공격은 위치를 잡아줄 필요가 있었다”며 “연타를 때릴 때도 회전을 많이 거는 법을 알려줘서 올 시즌 페인트 득점이 늘어난 것 같다”고 짚었다.

오기노 감독이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OK만의 배구’도 이러한 기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쉽게 점수를 내주지 않는 배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올 시즌 ‘경기당 서브 범실 10개 이하·공격 범실 8개 이하’라는 목표를 내걸었던 이유다.

미들 블로커에게도 “블로킹을 놀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는 “상대 서브 리시브가 좋든 나쁘든, 양 사이드에 뿌려지는 토스를 어떤 상황에서나 따라가라고 지시했다”며 “포기하지 않고 블로킹을 따라가면 그만큼 반격 상황이 생긴다고 선수들에게 끈질기게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틈이 없는 배구

OK금융그룹 감독 1년 차에 디그와 블로킹 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면, 2~3년 차엔 ‘틈이 없는 배구’를 실현하려 한다. 오기노 감독은 준우승으로 올 시즌을 마친 뒤 “업그레이드된 OK금융그룹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아직 구체적인 청사진을 말하기엔 이르지만, 그는 “대한항공처럼 어떤 선수가 나오든 안정적인 경기를 펼치는 팀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선수들의 스킬이나 시스템에서의 업그레이드는 “차기 시즌에 직접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범실에 관한 지침도 선수 구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오기노 감독은 “강서브를 때릴 수 있는 선수들이 있다면 서브 범실 기준은 12개로 늘려볼 수 있다”면서도 “공격 범실은 6개도 사실 많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봤을 땐 5개 이내로 낮추고 싶다”고 덧붙였다.

물론, 팀의 전반적인 업그레이드를 위해선 선수뿐 아니라 감독의 성장도 동반돼야 한다. 오기노 감독은 “아직 한국 배구를 100%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며 “그 공부가 끝나면 선수들에게 조금 더 정확한 지시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배구 얘기를 할 땐 날카롭고 분석적이지만, 선수들 얘기만 나오면 한껏 누그러져 무장해제됐다. 그는 “선수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감독”을 지도자로서의 이상향으로 꼽았다. 이어 “무엇보다 신뢰 관계가 중요하다”며 “감독의 의도를 선수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훈련이나 시합이 끝날 때마다 선수들 한 명씩 돌아가며 소감을 말하게 하고, 모든 구성원에게 ‘오기상’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길 바랐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번 시즌 도중 트레이드로 온 박성진만 아직도 가끔 ‘감독님’이라 부른다”며 웃어 보였다.

팀을 맡은 지 1년이 채 안 됐지만 벌써 선수들에게 정이 많이 들기도 했다. 오기노 감독은 “우리 팀 선수들은 배움을 흡수하려고 하는 마음이 굉장히 강하고, 알려주면 일단 해보려고 한다”며 “귀여운 선수들이다. 이야기를 너무 잘 들어줘서 정이 들 수밖에 없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오기노 감독은 “이번 시즌 OK의 배구를 보면서 어땠냐”며 조심스럽게 역질문을 던졌다. 팀의 변화를 요청받고 한국에 온 만큼 팀에 대한 평가를 수시로 묻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칭찬보다도 “‘OK가 변했다, 밝아졌다, 응원하고 싶다’는 말이 가장 기쁘다”며 “내가 틀리진 않았나 싶을 때도 그런 말을 들으면 힘이 된다”고 전했다.

이누리 기자 nur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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