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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은 수천억·직원은 0원”… 노사 분쟁 새 불씨된 ‘성과급’

공정한 보상 요구 나선 MZ·사무직
현장 투쟁 아닌 트럭시위 등 고차원
“기성세대는 성과급=보너스 인식
젊은세대는 명확한 기준·규칙 원해”

게티이미지뱅크

2020년 무노조 경영 폐지를 선언한 삼성전자에서 지난 17일 창사 이후 첫 노동조합 쟁의가 열리자 재계에선 “노사 분쟁의 새 국면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과거 양대 노총과 생산직 위주의 ‘빨간 조끼’로 대표되던 현장 투쟁과 다르게 ‘공정한 보상’을 외치는 MZ세대·사무직 직원들의 불만 표출이 본격화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주로 SNS로 결집해 게릴라 문화행사, 익명 트럭 시위 등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쟁의를 벌인다. ‘공정한 성과주의’를 내세워 투명한 보상을 요구하는 점도 특징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18일 “공평, 공정 같은 가치 개념이 노사 갈등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삼성과 LG, 한화 등 주요 대기업의 노사 갈등은 ‘성과급 분쟁’이 불씨였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실적 부진 여파로 반도체(DS) 부문 초과이익성과급(OPI)이 0%로 책정되자 지난해 말 1만명이던 조합원 수가 석 달 새 배 넘게 급증했다. 여기엔 “임원들만 수천억원 성과급 잔치를 벌인다”는 비판 기류가 기름을 부었다. 삼성전자는 3년간 경영 실적에 따라 ‘임원 장기성과급’을 매년 나눠 지급하는데, 지난해 말 기준 지급액이 2616억원이었다. 이에 일반 직원들만 고통 분담을 강요받는다는 반발 여론이 고조된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도 성과급이 전년 대비 절반 수준(기본급 약 870→362%)으로 줄자 직원 1700여명이 돈을 모아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일대서 트럭 시위를 벌였다. 한화솔루션 큐셀부문도 연봉의 30% 수준이던 성과급이 14%로 떨어지자 “지급 기준을 공개하라”며 서울 중구 한화빌딩 주변에서 트럭 시위를 했다.

노사의 성과급 갈등은 한층 복잡한 고차 방정식이 되고 있다. 성과급을 임금으로 봐야하는지를 놓고 다투는 노동 소송의 결과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앞서 현대해상 전·현직 직원들은 사측을 상대로 “경영 성과급을 평균 임금으로 인정해 달라”고 소송을 냈는데, 1·2심 법원은 모두 직원들 손을 들어줬다. “12년 넘게 특정 기준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했다면 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였다. 연내 대법원 판결이 예정돼 있다.

만약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하면 기업은 성과급만큼 퇴직금 등을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인건비 증가를 피하려는 기업들이 매년 관례적으로 지급되던 성과급 성격을 크게 바꿀 것으로 보인다. 경영 실적이 좋을 때 많이 지급하고, 휘청거릴 때 대폭 줄이는 식이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진이 실질적인 성과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겠다고 할 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직원들과의 갈등이 잦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기성세대에겐 성과급이 단순한 ‘보너스’ 개념이었다면, 젊은 직원들은 명확한 기준과 규칙을 원하는 상황”이라며 “새로운 룰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한동안 진통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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