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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기억 속의 다락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어릴 적에 나는 난이 할머니네로 자주 놀러 갔다. 난이 할머니 집에는 ‘윤이’라는 아기가 있었다. 큰아들이 도시로 일자리를 구하러 가면서 딸을 맡긴 것이다. 나는 또래와 고무줄놀이 하며 노는 것보다 윤이를 돌보는 게 더 좋았다. 윤이는 목에 가제 손수건을 두르고 맑은 침을 흘렸다. 품에 안으면 희미한 젖내가 났다. 꽉 끌어안으면 깨질 것처럼 연하고 무른 살. 세상에 이렇게 희고, 작고, 말랑한 몸이 자란다니. 내가 윤이를 돌보는 동안 난이 할머니는 채마밭에서 부추도 뽑고 돼지 밥도 줬다. 나는 윤이의 눈앞에 대고 딸랑이를 흔들어 주다가 칭얼대면 업어 주었다.

난이 할머니는 가끔 다락에서 콩강정, 갱엿, 과줄 등을 꺼내 주었다. 윤이를 잘 돌봐준 대가였다. 대부분 오래 보관해서 기름에 전 내가 났지만 주전부리가 궁했던 탓에 나는 달게 먹었다. 하루는 난이 할머니가 금기 사항을 알려주었다. 다락문을 함부로 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맘때 아이들은 안다. 금기란 가장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라는 걸. 할머니가 부엌으로 가서 안 보이자 다락문을 몰래 열어 보았다. 오래된 마분지에서 나는 먼지 냄새가 났다. 잠자던 사물의 실루엣이 빛을 받아 조용히 깨어나는 것처럼 몽롱하게 빛났다. 다락 안의 물건들은 의외로 시시했다. 바둑판, 제기와 트랜지스터라디오 따위가 있었다. 그리고 초상화를 표구한 액자가 하나 있었다.

문득 뒤돌아봤을 때 난이 할머니가 서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뜻밖에 할머니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그저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점잖게 타이를 뿐이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금기를 깼다는 가책 때문인지 예전처럼 자주 놀러 가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짐작건대 그 초상화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 아니었을까. 윤이는 모르겠지. 네 친할머니에 관한 기억을 나도 나눠 가졌다는 걸.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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