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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상속세의 불편한 진실

이성규 산업1부장

입력 : 2024-04-18 04:08/수정 : 2024-04-18 15:00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사촌이 그럴진대 피 한 방울 안 섞인 부자들이 자기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 내는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재산을 불리며 꼬박꼬박 소득세를 낸 이들에게 다시 한번 상속재산의 절반가량을 세금으로 내라고 하는 것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

유수의 식품기업 A사 사례가 그렇다. 70세를 넘긴 A사 창업주는 아들에게 물려줘 이 기업을 더 키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상속재산의 50%가량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더 성장하기 위해 시설 현대화 등 재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경영권 승계가 시급하다. 인공지능(AI)을 공부한 아들도 불만이 많다. 상속세를 낼 돈도 없고 결국 아버지가 물려준 주식을 팔아야 하는데 그러면 경영권을 위협받을 것 같다. 상속세를 깎아주는 가업 승계지원제도의 혜택을 받으려고 보니 조건이 까다롭다. 차라리 사모펀드에 회사를 팔고, 그 돈으로 AI 관련 스타트업을 만들고 싶은데 그러자니 자신만 바라보는 수천 명 직원이 눈에 밟힌다. 자수성가한 80대 B씨도 고민이 많다. 막노동부터 시작해서 강남에 빌딩 한 채 마련한 게 재산의 전부인데 자녀에게 상속하려니 빌딩 가액의 절반이 세금이다. 샐러리맨인 자녀들에게 십수억 원의 여유자금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결국 상속세를 내려면 자신이 평생을 피땀 흘려 만든 빌딩을 파는 수밖에 없다.

한국의 상속세는 징벌적 성격이 강하다. 30억원 이상을 상속받으면 50%의 세율이 적용된다. 기업인이면 물려받는 주식에 최대주주할증과세를 포함하면 60%까지 오른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직계비속에 상속세를 부과하는 18개국 평균은 26.5%(2021년 기준)에 불과하다. 상속세의 원조인 영국을 포함해 세 부담을 줄여주는 게 세계적 추세다. 그래서 십수 년 전부터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장수 기업만이라도 상속세를 깎아줘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정치권은 부정적이다. ‘부자 감세’라는 틀을 깨기 힘든 탓이다.

중소·중견기업의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적용 대상이 제한적이고 요건이 엄격해 혜택을 보는 기업은 극소수다. 2018~2022년 5년 동안 이 제도를 활용한 국내 기업은 연평균 111개, 공제금액은 3165억원에 그쳤다. 반면 상대적으로 요건이 느슨한 독일과 영국은 각각 1만1079개와 2583개 기업이 이 제도를 이용해 10조원에 가까운 상속세를 절감했다.

사정이 이러니 상속세를 그대로 내면 바보 소리를 듣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그래서 삼성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발행했고 현대차는 글로비스를 만들어 일감을 몰아줬다. 이를 본 중견기업들도 따라하기에 나섰다. 알짜 사업을 자녀 명의 회사로 몰아주고 자녀는 거기서 번 돈으로 주식을 양도받는다. 주식 양도세율은 25%에 불과하니 상속세보다 절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런 편법을 막기 위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이 강화되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아지자 경영권 승계 문제를 두 손 놓고 창업주가 장수하기만을 바라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단순히 부의 대물림 문제만이 아니다. 업력이 긴 장수기업일수록 매출액과 고용 인원이 증가한다. 상속세 부담으로 이런 기업의 투자가 위축된다면 성장동력은 약화하고 고용 사정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여소야대가 극대화된 상황에서 상속세 개편이 국회 문턱을 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제를 위해 정치권이 과감히 표를 잃어버리는 세법 개정을 했으면 한다.

이성규 산업1부장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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