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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기 했던 말 10주기에도 할 수밖에”

[열 번째 봄의 할 일]
위험사회에서 안전사회로 ③ 끝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참사 10주기를 맞은 16일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인근 참사 해역에서 열린 선상추모식에서 바다를 향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로부터 10년이 흘렀다. 2014년 사고 당시 온 국민이 정부의 재난대응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와 국회, 시민단체 등은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법과 제도 개선에 나섰다. 재난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노력에도 지난 10년간 현장의 재난대응 능력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한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여전히 정부는 현장을 잘 모른다. 재난 관리자들은 무엇부터 해야 할지조차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재난관리 체계가 중앙정부 중심으로 돼 있어 현장에선 중앙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세월호 1주기인 2015년 4월 국민일보 인터뷰 때도 같은 지적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1주기에 했던 말을 10주기에도 똑같이 할 수밖에 없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구조자, 승선자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중대본이 가동된 것도 침몰 최초 신고 이후 53분이 지난 뒤였다. 중대본 운영 매뉴얼이 없어 실무자들은 사고 당일 자신의 업무분장도 모르는 채 중대본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대대적인 재난 시스템 정비가 이뤄졌다. 정부는 ‘재난 및 안전관리법’을 뜯어고치고 재난안전 분야를 총괄하는 국민안전처(2017년 폐지)를 신설했다. 현장 지휘관으로서 지방자치단체장의 역할을 강화하고 방재안전직을 확충하는 등 현장 역량을 개선할 계획도 내놨다.

법과 제도는 바뀌었지만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때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되풀이됐다. 당시 행정안전부는 제때 보고조차 받지 못했고 중대본 가동은 참사 다음 날에야 이뤄졌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1조5000억원을 들여 만든 ‘재난안전통신망’도 제대로 사용되지 않아 기관 간 혼선이 빚어졌다. 지난해 7월 14명이 숨진 오송 궁평지하차도 참사 역시 전날부터 위험 경고가 있었지만 이를 간파하고 사고 예방에 나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충북도 간부는 지하차도 통제 권한이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세월호 이후 안전시스템과 재난대응책은 선진국 최상위 수준으로 갖춰졌다. 문제는 이를 사용하는 재난관리자들 대부분이 가장 기본적 지식인 재난관리 4단계(예방-대비-대응-복구)도 모른다는 점”이라며 “재난안전관리의 첫 대응을 하는 기초지방자치단체장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10년째 하고 있지만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진전도 있었다. 매년 4월 16일은 ‘국민안전의 날’로 제정됐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생존 수영 교육이 의무화됐다. 교육청에서도 안전총괄과, 안전지원국 등을 신설하는 제도적 변화가 있었다. 민간단체나 기관에서 찾아볼 수 없던 재난훈련도 시행되고 있다.

세월호는 재난 피해자는 물론 당시 참사를 목격한 시민에게도 커다란 트라우마를 남겼다. 재난 피해자에 대한 즉각적인 심리 지원과 위기 개입의 중요성이 주목받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설립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처음 시행됐던 유가족과 공무원을 1대 1 매칭해 장례를 지원하는 제도도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이후 재난 현장에서 관행처럼 도입됐다.

문제는 이런 국가 지원이 한시적 방편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른 의료 지원은 지난 15일 종료됐다. 미국 9·11 테러와 같이 기한 제한 없이 의료 지원하는 법안이 나왔으나 입법은 무산됐다. 희생자 명예 회복과 치유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4·16재단 운영비 보조금도 올해 전년 대비 31% 삭감됐다. 예산이 줄어든 건 올해가 처음이다. 임주현 4·16재단 사무처장은 “2028년 재단에 지원이 끊기면 의료 지원 등이 모두 중단될 수밖에 없어 긴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도 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피해자와 유족은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거리로 나오고 있다. 안전권과 피해자의 권리 등을 담은 생명안전기본법도 4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은 “공적 제도가 마련돼 있다면 피해자들이 매번 거리로 나설 필요가 없다”며 “그동안 사고가 벌어지면 개별적으로 특별법을 만드는 식으로 처리해왔다. 구조적 원인 등을 조사할 수 있는 상설적이고 전문적인 조사 기구와 피해 회복을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가 학습해야 했지만 지난 10년을 정치적 공방을 벌이는 데 썼다”며 “정치적 부담 때문에 참사의 구조적 원인에 관한 연구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누구 책임이냐는 논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분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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