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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욱 칼럼] 국회 권력과 타협의 정치 하라는 게 민심이다


여소야대, 대통령제서 흔한 일
오히려 대화의 기회 될 수 있어

과거 정계개편·의원빼가기는
한국 정치의 퇴행 불러왔을 뿐

야당의 입법부 권력 인정하고
함께 일하라는 게 국민의 명령

총선이 끝난 지 1주일이 지났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아직도 참패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 임기는 절반 넘게 남았는데 최악의 레임덕이 공공연히 거론된다. 기세등등한 야당의 공세에 남은 3년을 걱정하는 탄식이 나온다. 그런데 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에서는 4선 이상 의원들이 모였지만 마땅한 대책은 없었다. 장고 끝에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는 충분치 않았다. 국정 정상화를 위한 출발점이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방법론이 들어있지 않았다.

사실 답은 이미 나와있다. 윤 대통령이 입법부에 현존하는 권력의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21대에 이어 22대 국회도 장악했다. 국민은 힘을 한곳에 몰아주지 않았다. 입법권력을 다시 야당에게 줌으로써 대통령을 견제토록 했다.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의 입법 폭주와 포퓰리즘이 못마땅했지만 단죄는 일단 접어뒀다. ‘내로남불’과 ‘막말’마저 잠시 참기로 했다. 여소야대는 21대 국회도 마찬가지였지만 정권심판론과 이·조 심판론이 정면으로 맞붙어 만들어진 22대 국회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해법을 찾을 수 없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여소야대(divided government·권력분점)는 자주 발생한다. 선거로 국민의 대표를 뽑고, 그들이 모인 의회에서 정부를 구성하는 의원내각제와 달리 대통령제는 이원적 정통성이 특징이다. 대통령과 국회가 각각 국민에게서 직접 권력을 위임받기에 대통령이 속한 정당과 의회 다수당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1970년대 이후 여소야대가 대세다. 공화·민주당 양당제가 자리를 잡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부터 1969년 린든 존슨 대통령까지 108년 동안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하원 다수당인 경우는 74년이었다. 그러나 존슨의 후임 리처드 닉슨 대통령부터 올해까지 이 경우는 16년으로 줄었다. 최근 56년 동안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야당이 다수를 점한 하원을 상대해야 하는 여소야대 기간은 40년(71%)에 달했다. 야당이 상원까지 장악해 양원이 여소야대였던 기간도 24년이나 됐다. 정당의 이념·정책적 차이가 옅어지자 유권자들은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을 견제하는 방편으로 여소야대를 택하고 있다.

대통령제는 의원내각제에 비해 ‘정치의 맛’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여소야대 상황은 조금 다르다. 미국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재임기간 평균 지지율 1, 2위 대통령은 빌 클린턴(66%)과 로널드 레이건(63%)이다. 이들은 세제·복지 개혁을 이루고 경제를 되살렸다. 흔들렸던 당이 다시 일어서도록 기초를 닦았다. 그런데 클린턴은 재임기간 8년 중 6년을, 레이건은 8년 내내 여소야대에 시달렸다. 심지어 레이건은 팁 오닐, 클린턴은 뉴트 깅리치라는 초강성 하원의장을 상대했다. 두 대통령의 탁월한 정치력은 그래서 더욱 빛났다. 야당과의 채널을 늘 열어놓고,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지렛대로 썼다. 정치학자들은 이런 점에서 여소야대가 유익한 정치적 타협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조정과 합의가 불가피해 극단적 주장을 배제한 합리적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여소야대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상황이다. 그러나 극복하는 방식은 신통치 못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3당 합당이라는 인위적 정계개편으로,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사정정국 조성과 의원 빼가기로 위기를 넘겼다. 그 과정에서 정치는 ‘이합집산’과 ‘철새 정치인’이라는 말만 남기고 퇴행의 길을 걸었다. 이후 정치지도자들은 추진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개헌론을 툭툭 던지며 할 일을 방기했다. 이들이 헌법을 탓하는 대신 타협의 기술을 익혔다면 우리 정치는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윤 대통령도 같은 시험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첫 2년은 총선에서 이기자는 생각으로 완강하게 버텼지만 앞으로 3년은 그마저 사라졌다. 결국 남은 건 타협의 길 뿐이다. 당장의 패배를 딛고 일어설 추동력이자, 우리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방법이기도 하다. 대선불복이라고 할 만큼 집요하게 탄핵을 주장하고, 정치를 개인적 복수의 도구로 생각하는 야당과 어떻게 타협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국민은 대통령에게 그들과 함께 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게 총선 결과로 확인된 민심이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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